매직패스에 긁히는 사회
놀이공원에서 누가 옆 통로로 쓱 지나갈 때, 우리는 잠깐 자본주의의 민낯을 본다. 돈 낸 사람이 먼저 탄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이 규칙이 어디까지 따라와도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놀이공원에서 누가 옆 통로로 쓱 지나갈 때, 우리는 잠깐 자본주의의 민낯을 본다. 돈 낸 사람이 먼저 탄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이 규칙이 어디까지 따라와도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운동회 소리가 민원이 되고, 어린이집 울음소리가 항의의 대상이 되고,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거슬리는 시대. 우리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권리를 행사한다. 그럴수록 함께 살아갈 세계는 조금씩 좁아지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점차 퇴보한다.
코스피가 7000을 넘은 날, 사람들은 조용히 화장실에서 주식 앱을 열었다. 계좌는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무표정해야 했다. 돈 번 기쁨은 언제나 작게 숨겨야 품위가 생긴다.
우리는 이제 무언가를 사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믿기 전에 검색하며, 지불한 뒤에도 오래 영수증을 바라본다.
황동만 같은 사람은 실패해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타인의 기쁨과 성취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견디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와 오래 머물수록 그의 자기혐오는 어느 순간 나의 자기의심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하루가 궁금하다. 다만 이제 그 궁금함을 위해 사진을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삶을 작은 무대처럼 꾸미고 싶지는 않다. 2초짜리 장면들로 이어지는 느슨한 안부, 콘텐츠가 되기 전의 일상, 그리고 아직 끊기지 않은 관계의 기척.
1km를 421번. 어떤 한 걸음도 특별히 빠르지 않았다. 다만 어느 걸음도 느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시대의 러다이트는 미래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가 누구의 손으로 누구의 밥벌이를 가져가는지 캐묻는 사람이다.
가족은 아름답다기보다 복잡하다. 사랑과 의무, 미안함과 피로, 다정함과 원망이 한집에 산다.
요즘 물건은 너무 쉽게 늙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무 쉽게 늙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물건은 고장 날 수 있고, 부품은 닳을 수 있다. 닳은 부품을 바꾸고 계속 쓰는 당연함이 왜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까.
국수를 먹으러 갔지만, 결국 국물을 마시고 나온다. 면은 핑계고, 콩물이 본심이다.
더 받은 사람이 아니라, 덜 받은 기분이 문제다. 이미 충분한 사람도, 옆의 기준 앞에서는 쉽게 부족해진다. 만족은 조건이 아니라 거리의 문제다.
생활과 소비
우리는 더 쉽게 서로에게 닿게 되었지만, 그만큼 쉽게 사라질 수는 없게 됐다. 한때는 접속을 기다리며 관계를 상상했는데, 이제는 연결된 채로 침묵을 해석한다.
취향과 문화
대전의 늑대 한 마리가 도심을 열흘간 떠돌다 돌아온 자리는 원래의 그 사육장이었다.
생활과 소비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제도가 너무 가혹해서가 아니다. 몇만 원의 상환액조차 버거워진 청년의 삶, 그 얇아진 생활의 바닥이 만든 현실이다.
권력과 자본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취향과 문화
에스컬레이터 위의 한 줄은 늘 비어 있다. 우리는 그걸 배려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 배려가 기계를 더 빨리 닳게 하고, 사람들을 더 오래 기다리게 만든다면, 그건 여전히 배려일까.
권력과 자본
네타냐후를 히틀러라고 부르는 것은 도덕적 규탄에 가깝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해부해보면 그는 박정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안보를 앞세워 장기 집권을 정당화하고, 국가의 불안을 자신의 통치 기반으로 바꿔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생활과 소비
마가린은 버터보다 맛이 없고, 인공적이며, 저렴하다. 그래서 늘 의심 받고,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있다.
취향과 문화
어느 순간부터 거의 모든 것 앞에 K가 붙기 시작했다. K팝과 K드라마에서 시작된 이 알파벳 하나는 이제 음식과 산업을 넘어 눈치와 회식, 층간소음과 재난문자, 심지어 얼죽아와 부먹찍먹 같은 사소한 취향까지 포괄한다.
발견
낡은 파출소를 산다는 말은 농담 같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꽤 설득력 있다. 동네의 중심이었던 자리를 허물고 고치며 다시 채워가는 이 프로젝트는, 서울에서 집을 갖는 또 다른 상상력을 보여준다.
생활과 소비
퇴근하고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 끝에 걸터앉아, 세탁물은 그대로 둔 채 한참 휴대폰만 내려다보는 시간. 마흔은 그런 식으로 온다.
권력과 자본
컨트롤은 실수를 줄인다. 커맨드는 흐름을 바꾼다. 실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경기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다.
생활과 소비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