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수명

요즘 물건은 너무 쉽게 늙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무 쉽게 늙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물건은 고장 날 수 있고, 부품은 닳을 수 있다. 닳은 부품을 바꾸고 계속 쓰는 당연함이 왜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까.

Share
물건의 수명

내 폰은 지금 68%의 삶을 살고 있다. 배터리 상태 메뉴에 그렇게 적혀 있다. 100%였던 몸뚱이가 3년 만에 3분의 2가 됐다는 뜻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숫자를 사람 건강검진 결과처럼 본다. "아, 얘도 이제 슬슬 노인이구나." 화면은 여전히 선명하고 카메라도 멀쩡한데, 배터리 하나가 전체의 나이를 결정한다. 기계의 세계에선 배터리가 곧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다.

생각해보면 배터리는 늘 가장 먼저 지치는 직원이다. 프로세서는 야근해도 멀쩡하고, 스피커도 3년째 같은 소리를 낸다. 그런데 배터리만 혼자 번아웃이 온다. 아침에 100이었던 애가 점심도 안 됐는데 37을 가리키며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그 눈빛을 몇 번 마주치면 사람은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폰을 바꿀 때가 됐나 봐." 배터리 한 명이 퇴사했을 뿐인데, 회사 전체를 폐업시키는 꼴이다.

EU가 2027년 2월부터 내놓는 규정은 이 이상한 상황에 제동을 걸겠다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기기의 배터리를 사용자가 직접 갈 수 있게 만들라는 것. 뉴스로 보면 그냥 또 하나의 규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철학적인 질문이 들어 있다. 당신이 산 물건의 주인은 정말 당신인가.

한때는 배터리 교체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피처폰 시절, 뒤판을 엄지손톱으로 톡 열고 새 배터리를 끼우는 건 누구나 할 줄 아는 동작이었다. 예비 배터리를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배터리는 소모품이고, 소모품은 원래 바꾸는 거였다. 치약이 떨어지면 새 치약을 사지, 욕실을 리모델링하지는 않는다. 그땐 그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폰이 점점 얇아지고 예뻐지면서, 배터리는 내장 기관이 되어버렸다. 접착제로 고정되고, 열려면 특수 공구가 필요하고, 잘못 건드리면 A/S 권리를 포기해야한다. 내 물건인데 나는 못 연다. 자동차 보닛도 여는 세상에, 손바닥만 한 기계의 뚜껑은 금고보다 단단하다.

이 모든 건 늘 진보의 언어로 설명됐다. 더 얇게, 더 매끈하게, 더 견고하게. 방수도 되고 디자인도 예뻐졌다. 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대가로 우리는 배터리 하나 때문에 50만 원짜리, 100만 원짜리, 200만 원짜리 기계를 통째로 교체하는 통 큰 사람이 됐다. 수리는 번거롭고, 교체비는 부담스럽고, 어느 순간 새 폰을 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선택지가 된다. 물건의 수명은 고장이 아니라 귀찮음으로 끝난다.

이게 묘한 건, 우리가 하루에 가장 오래 만지는 물건이 바로 이 폰이라는 점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고, 밥 먹으면서 보고, 지하철에서 보고, 자기 전까지 본다. 연락도, 결제도, 사진도, 일기도, 심지어 연애의 시작과 끝도 여기 들어 있다. 삶의 거의 모든 기록이 저장된 이 기계를, 우리는 부품 하나조차 스스로 갈 수 없다. 가장 가까운 물건인데 가장 안 친한 사이. 이상한 관계다.

그래서 이번 규정을 단순히 '친환경 정책'이라고 부르면 어딘가 부족하다. 물론 쓰레기도 줄고 자원도 아끼겠지만, 나는 그보다 '소유권의 복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을 주고 산 물건에 대해, 내가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는가. 닳은 부분을 갈아 끼우며 계속 쓰겠다는 마음이 왜 어느새 이상한 고집처럼 여겨지게 됐는가.

닳는 건 결함이 아니라 쓴 흔적이다. 문제는 닳았을 때 되살릴 방법이 있느냐다. 배터리 하나 바꾸는 일이 새 기계를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사회에서는, 짧아지는 게 배터리 수명만이 아니다. 한 물건을 오래 쓰면서 정이 드는 감각, 손때가 묻어가는 시간, 조금 고쳐서 더 쓰자고 말해보는 태도. 그런 것들이 같이 짧아진다.

이번 규정이 세상을 뒤집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정말 수명이 다한 건 그 물건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빨리 포기하도록 설계된 방식이었을까. 새것을 사는 일보다 가끔 더 필요한 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났다고 부르지 않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