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가 아니라니 믿을 수 없어

마가린은 버터보다 맛이 없고, 인공적이며, 저렴하다. 그래서 늘 의심 받고,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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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가 아니라니 믿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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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 번 배운 상식은 좀처럼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특히 그 상식에 공포가 섞여 있을 때는 더 그렇다.

마가린이 딱 그런 경우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마가린은 아직도 ‘트랜스지방 덩어리’다. 몸에 가장 나쁜 기름. 버터를 흉내낸 가짜 음식. 그런데 이 이미지는 꽤 오래전에 만들어져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변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2006년부터 트랜스지방 표시가 의무화됐고, 이후 식품업계는 트랜스지방을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7년 12월부터 가공식품의 트랜스지방 표시가 의무화됐고, 식약청은 업계에 트랜스지방 저감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당시 기준으로 트랜스지방이 0.2g 미만이면 0g으로 표시할 수 있도록 했고, 실제로 많은 제품이 그 범위로 이동했다.

그 뒤로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가린의 이미지는 그대로다. 프랑스산 이즈니 버터나 버터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라꽁비에뜨 버터를 찾아먹는 시대에 마가린은 여전히 길거리 토스트 만들 때나 쓰는 싸구려 불량식품 취급을 받고 있다.

꺼져라, 이 가짜 버터야

1869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군인과 서민을 위한 저렴한 버터 대체품 개발을 공모했다. 당시 버터는 귀족과 부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은 기름기 있는 식품이 절실했다. 화학자 이폴리트 메주무리에가 이에 응답해 소기름과 버터밀크를 섞어 만든 것이 마가린의 원형이다. 이름도 그리스어로 '진주'를 뜻하는 마르가리테스(margarites)에서 왔다. 출발부터 '가짜 버터'가 아니라 나름 고귀한 이름을 가진 식품이었다.

이후 마가린은 미국으로 빠르게 건너왔지만, 낙농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1886년, 미국 의회는 마가린세법(Margarine Act) 을 통과시켰다. 마가린에 파운드당 2센트의 세금을 물렸고, 판매업자는 연간 48달러의 면허세를 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여러 주에서는 마가린에 분홍색이나 형광색 색소를 첨가하도록 강제했다. 소비자가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먹음직스럽지 않은 색깔로 만들면 아무도 안 사겠지"라는 전략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유치하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러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흰색 마가린과 별도 포장된 노란색 색소를 함께 사서 집에서 직접 섞어 버터색을 만들기도 했다. 

일부 주에서는 아예 판매 자체를 금지했다. 위스콘신 주는 1967년까지 마가린 판매를 제한했는데, 이 주는 지금도 '미국 유제품의 수도'를 자처한다. 지금도 미국 낙농업자 로비단체(NMPF)의 연간 예산은 수억 달러다. 그들이 100년 넘게 싸워서 지킨 건 버터를 얼마나 더 건강하게 만들까 하는 것이 아니라, 버터가 가진 순수하고 건강한 이미지였다.

트랜스지방 함량 0%

20세기 중반, 마가린은 기술적으로 진화하면서 수소 첨가 공정(hydrogenation) 을 사용했다. 액체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강제로 집어넣어 고체로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트랜스지방이 대량 생성됐다. 당시 마가린은 트랜스지방 덩어리였고,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연구들이 이를 집중 조명하면서 마가린은 공공의 적이 됐다.

그러나 식품 업계는 공정을 바꿨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부분의 마가린은 인터에스터리피케이션(interesterification) 이나 부분 수소 첨가 대신 완전 수소 첨가 후 블렌딩 방식으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판 마가린의 트랜스지방 함량은 1회 제공량당 0.2g 미만, 즉 법적으로 0g 표기가 가능한 수준이다. 미국 FDA는 2018년부터 아예 부분 수소 첨가유의 사용을 금지했다.

반면 버터는? 버터의 트랜스지방은 자연 발생 트랜스지방인 CLA(공액리놀레산) 형태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주장이 있고 이건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만 버터가 포화지방 덩어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건강 측면에서 버터와 마가린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몸에 부담을 주는 경쟁자일 뿐, 버터가 압도적으로 건강한 식품으로 보긴 어렵다.

버터 1kg을 만들기 위해 젖소는 약 20~25리터의 우유를 생산해야 한다. 젖소 한 마리는 하루에 메탄가스를 약 250~500리터 배출한다. 메탄은 CO₂보다 온실효과가 약 25배 강하다. 낙농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4%를 차지하며, 이건 전체 항공 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반면 마가린의 주원료인 팜유나 대두유는 물론 그 자체로도 환경 논란이 없지 않지만, 단위 열량당 탄소 발자국은 유제품보다 현저히 낮다. 채식주의자들이 버터 대신 마가린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게다가 실용적 측면도 있다. 마가린은 상온에서도 멀쩡하고, 유통기한이 길며, 버터의 4분의 1 이하 가격이다. 냉장고 없던 시절의 군용 식품에서 출발한 만큼 보관 효율은 처음부터 태생부터 새겨진 장점이다.


마가린은 맛이 없다. 정확히는, 버터보다 맛이 없다. 버터의 그 깊고 고소한 풍미는 수천 년 인류가 쌓아온 진화적 선호이고, 인공 버터향을 넣은 기름이 그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이건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가린이 특별히 더 위험한 식품이라는 상식은 이미 20년 전에 깨졌어야 했다.

버터를 사랑하는 건 좋다. 맛있으니까. 하지만 마가린을 멀리하는 이유가 단지 트랜스지방 때문 이라면 그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