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메신저 연대기

우리는 더 쉽게 서로에게 닿게 되었지만, 그만큼 쉽게 사라질 수는 없게 됐다. 한때는 접속을 기다리며 관계를 상상했는데, 이제는 연결된 채로 침묵을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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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메신저 연대기

누군가와 대화하려면, 예전에는 먼저 그 사람이 들어와 있어야 했다. 지금 세대에게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대화를 하려는데 왜 접속 여부가 중요하냐고. 하지만 정말 그랬다. MSN 메신저 시절에는 상대 이름 옆 아이콘이 회색이면 그냥 끝이었다. 그 사람은 지금 없는 사람이었다. 오프라인이라는 말은 단지 기계의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상태이기도 했다. 닿고 싶어도 닿지 않는 시간, 그리고 그걸 그냥 받아들이는 감각. 지금 생각하면 불편했지만, 이상하게 좀 낭만적이었다.

MSN은 지금의 카카오톡처럼 생활 전반을 점령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오로지 누군가와 컴퓨터로 대화하기 위한 통로였다. 닉네임은 길었고, 상태메시지는 괜히 의미심장했으며, 누가 접속했다는 알림 하나에도 마음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던 사람도 밤 11시에 갑자기 들어오면 괜히 의식하게 됐다. 그 시절 메신저는 말을 주고받는 창이기 전에 존재를 확인하는 장치였다. 대화보다 접속이 먼저였고, 문장보다 기척이 먼저였다.

버디버디가 인기 있던 시절에 나는 이미 직장인이었기에 그리 즐겨 쓰진 않았다. 그래도 그 분위기는 기억난다. MSN이 하얗고 파란 셔츠 같았다면, 버디버디는 형광펜으로 줄 그어 놓은 사춘기였다. 좀 더 한국적이었고, 좀 더 유치했고, 그래서 좀 더 뜨거웠다. 대화명 하나에 오늘의 기분, 서운함, 관심사, 짝사랑, 약간의 협박까지 다 들어갔다. “건들지마”, “다 귀찮아”, “웃겨 정말”. 지금 돌아보면 민망한데, 그때는 다들 진심이었다. 지금처럼 읽음 표시 하나 두고 속으로 해석하기보다, 그때는 차라리 대화명으로 감정을 발표했다.

그러다 네이트온이 왔다. 여기서부터 메신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물론 친구들과도 썼지만, 처음으로 실용의 냄새가 났다. 파일을 보내고, 링크를 공유하고, 여러 사람을 한 방에 묶어놓고, 메신저가 말 그대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됐다. 학생들은 숙제 파일을 보내고, 대학생들은 조별과제를 하고, 직장인들은 업무 자료를 주고받았다. 누군가와 친해서 말을 거는 것과, 일이 있어서 말을 거는 것이 같은 창 안에서 벌어졌다. 메신저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공간이 됐다. 연락이 대화이면서 처리이기도 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카카오톡. 사실 여기서부터는 메신저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하다. 카톡은 친구와 수다 떠는 앱이 아니다. 가족방이 있고, 회사방이 있고, 동창방이 있고, 학부모방이 있고, 공지와 송금과 선물하기와 청첩장과 부고까지 다 들어온다. 카톡은 대화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배관 같은 것이다. 물과 전기처럼 이미 깔려 있고, 없으면 불편한 수준이 아니라 일상이 멈춘다. 예전에는 “오늘 메신저 켤까 말까”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카톡을 안 본다는 것이 거의 사회생활의 일부를 잠시 멈추는 일이다.

카톡 이후의 관계는 훨씬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더 피로해졌다. 예전에는 상대가 접속하지 않으면 그냥 못 만났고, 그래서 단념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늘 연결돼 있다. 그래서 오히려 무시와 지연과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 메시지를 못 본 게 아니라 안 본 것 같고, 안 본 게 아니라 일부러 늦게 보는 것 같고, 늦게 본 게 아니라 답을 미루는 것 같아진다. 기술은 정보를 더 많이 줬지만,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태를 더 많이 알게 됐고, 그만큼 더 많이 추측하게 됐다.

읽음 표시와 단톡방은 그 피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예전에는 부재가 분명했고 그래서 깔끔했다. 그런데 카톡에서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왜 답이 없는지, 지금 바쁜 건지 기분이 상한 건지까지 상상하게 된다. 단톡방은 또 어떤가. 가족 단톡방, 회사 단톡방, 친구 단톡방, 이제는 거의 아무 말도 오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가기도 애매한 단톡방. 카톡은 인간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예전 메신저는 접속이 끊기면 관계도 조금씩 멀어졌지만, 카톡에서는 관계가 종료되지 않고 보존된다. 말이 없어도 방은 남고, 알림은 꺼도 존재는 남는다.

그래서 가끔은 예전 메신저들이 그리워진다. MSN의 회색 아이콘, 버디버디의 과장된 대화명, 네이트온의 조금은 성실한 창들. 물론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그때 인터넷은 느렸고, 디자인은 촌스러웠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덜 상시적이었다. 누군가와 닿는 데에는 약간의 우연과 기다림, 그리고 체념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 잘 닿아서 오히려 문제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답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겼다.

MSN에서는 기척을, 버디버디에서는 감정을, 네이트온에서는 실용을, 카톡에서는 상시 연결의 피로를 배웠다. 우리는 더 많이 연결됐지만, 꼭 더 가까워진 것만은 아니다. 더 많이 대화하지만, 꼭 더 깊이 말하는 것도 아니다. 메신저는 점점 똑똑해졌는데, 인간관계는 그만큼 편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상대에게서 조용히 사라질 권리를 조금씩 잃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