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의 민족
운동회 소리가 민원이 되고, 어린이집 울음소리가 항의의 대상이 되고,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거슬리는 시대. 우리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권리를 행사한다. 그럴수록 함께 살아갈 세계는 조금씩 좁아지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점차 퇴보한다.
어느 초등학교에 민원이 들어왔다. 운동회 날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다는 내용이었다. 평일도 아니고 토요일 오전이었다. 민원인은 재택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학교는 다음 해부터 운동회 때 응원 소리를 줄여달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아이들이 작게 응원하는 운동회가 어떤 모습인지 나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느 어린이집 앞에도 민원이 들어왔다. 등원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내용이었다. 어린이집은 등원 시간을 분산시키고, 우는 아이는 빨리 안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까닭은 대체로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서인데, 그 울음을 줄이기 위해 부모와의 인사를 줄이는 일이 일상이 됐다.
어느 도서관에는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거슬린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도서관은 방음 가벽 설치를 검토했다. 책 넘기는 소리가 거슬리는 사람이 도서관에 가는 이유에 대해 나는 오래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그러나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니 화도 늦게 온다. 119에 모기를 잡아달라는 신고가 들어오고, 경찰에 치킨이 늦게 왔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구청에 옆집 김치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온다. 이쯤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화내는 민족이 아니라 서로를 신고하는 민족이 된 것 같다.
이 민원들 밑에는 한 가지 공통된 감정이 있다. 호구가 되기 싫다는 감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호구는 가장 피하고 싶은 정체성이다. 손해 본 사람보다 참은 사람이 더 어리석어 보이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호구가 된 사람이 더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불편에도 민원을 넣고, 사소한 손해에도 항의하고, 가능한 모든 권리를 가능한 모든 순간에 행사한다.
문제는 이 감정이 권리에 대한 오해와 결합할 때 생긴다.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권리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안다. 내 권리가 끝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권리가 시작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권리를 “참으면 손해 보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경계가 없다. 운동회 소리는 평온할 권리의 침해가 되고, 어린이집 울음소리는 정숙할 권리의 침해가 되고, 책장 넘기는 소리는 조용히 책 읽을 권리의 침해가 된다. 권리의 영토가 끝없이 넓어진다.
하지만 운동회 날 시끄러운 일은 내가 참아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 운동회다.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가 우는 일도 내가 참는 일이 아니다. 그곳이 어린이집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나는 일은, 말 그대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는 일이다. 참는 것은 권리의 양보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세계의 인식이다.
권리에 대한 진짜 이해는 자기 권리를 키우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권리가 멈춰야 할 곳을 아는 능력이다. 운동회 날에는 시끄러워도 된다는 합의, 어린이집 앞에서는 아이가 울어도 된다는 합의, 어린이 열람실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나도 된다는 합의. 이런 합의는 누구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 아니다. 모두의 권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세계의 크기를 정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그 합의를 하나씩 잃고 있다. 합의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한히 확장되는 개인의 권리만 남고, 그 권리들이 부딪히는 곳마다 민원이 쌓인다. 학교는 운동회를 줄이고, 어린이집은 인사를 줄이고, 도서관은 어린이 공간을 줄인다. 모두가 호구가 되지 않으려 애쓴 결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부피가 조금씩 줄어든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까지 호구가 되기를 거부한 우리가 정작 더 행복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운동회를 못 한 아이는 불행하고, 응원을 줄인 학교는 피곤하고, 민원을 넣은 사람은 다음 주에 또 다른 민원을 넣는다. 권리의 영토가 넓어질수록 호구가 되는 감각도 함께 넓어진다.
민원의 민족. 우리는 참 부지런하다. 부지런히 권리를 지키고, 부지런히 신고하고, 부지런히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