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러다이트를 위한 변명
요즘 시대의 러다이트는 미래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가 누구의 손으로 누구의 밥벌이를 가져가는지 캐묻는 사람이다.
AI 러다이트라는 말이 다시 회자된다. 그럴줄 알았다. 처음 들으면 꼭 최신 기술을 싫어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챗GPT도 싫고, 이미지 생성기도 싫고, 자동화도 싫고, 가능하면 세상을 다시 종이수첩과 연필의 시대로 돌리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AI가 들어오는 방식이다.
기계가 사람 일을 도와주는 것은 좋다. 문제는 ‘도와준다’고 들어온 기계가 어느 순간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때다. 처음에는 “초안만 잡아줄게요”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초안도 쓰고 최종본도 쓰고 당신은 검토만 해주세요”가 된다. 그다음에는 “검토도 AI가 할 수 있지 않나요?”라는 말이 나온다. 이쯤 되면 이게 도움인지 헷갈린다.
작가들이 걱정하는 것도 그래서다. 내가 쓴 글을 AI가 몰래 배웠다. 그 AI가 다시 글을 쓴다. 그런데 그 글 때문에 내 일이 줄어든다. 이 구조는 아무리 좋게 봐도 찜찜하다. 일러스트레이터도 비슷하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선, 색, 분위기, 버릇 같은 것들이 데이터가 된다. 누군가 “이 작가풍으로 그려줘”라고 입력하면, 기계는 순식간에 비슷한 그림을 만든다.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런데 충분히 비슷하다. ‘충분히 비슷함’이 ‘굳이 원작자에게 맡기지 않아도 됨’으로 치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배우와 성우의 불안은 더 직접적이다. 얼굴과 목소리는 거의 몸의 일부다. 그런데 AI는 그것마저 복제할 수 있다. 촬영은 끝났는데 내 얼굴은 계속 일하고, 녹음은 끝났는데 내 목소리는 다른 대사를 말한다. 나는 퇴근했는데 나의 디지털 분신은 야근 중이다. 게다가 야근수당도 없다.
노동자들의 걱정도 여기서 이어진다. 회사가 AI를 도입한다고 할 때, 그 말이 늘 편안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떤 회사에서 AI는 업무를 줄여주는 비서가 되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직원을 평가하고 감시하고 줄 세우는 상사가 된다. 보고서를 빨리 써주는 AI는 반갑다. 그러나 내가 화장실에 몇 분 있었는지, 메일 답장이 몇 초 늦었는지, 회의에서 몇 번 발언했는지를 분석하는 AI는 별로 반갑지 않다.
그래서 AI 러다이트 운동은 “AI 꺼라”에 머물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AI를 마음대로 들여오지 말라”다. 사람의 글과 그림과 목소리를 배웠다면 허락을 받아라. 돈을 벌었다면 보상해라. 직장에서 AI로 평가할 거라면 기준을 공개해라. 사람을 자를 때 알고리즘 뒤에 숨지 마라. AI가 결정을 도왔다면, 그 결정에 책임지는 인간도 남겨둬라.
듣고 보면 아주 과격한 요구도 아니다. 남의 것을 썼으면 허락을 받자. 돈을 벌었으면 나누자. 사람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결정은 설명 가능해야 한다. 억울하면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도 나올 법한 말들이다. 그런데 기술이 커지고 돈이 붙으면, 이런 평범한 말들이 갑자기 시대낙오적으로 들린다.
AI를 둘러싼 갈등은 사실 인간과 기계의 싸움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다. 한쪽 인간은 AI를 만든다. 한쪽 인간은 AI에게 배운 원고와 그림과 목소리를 제공한다. 한쪽 인간은 AI를 사서 생산성을 올린다. 한쪽 인간은 그 AI 때문에 단가가 내려가거나 자리가 흔들린다.
물론 AI를 막을 수는 없다. 막는다고 막아질 기술도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쓰고 있고, 실제로 편리하다. 글을 정리하고, 번역을 돕고, 자료를 찾고, 복잡한 일을 빠르게 처리한다. 문제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절차를 건너뛰면 안 된다는 데 있다.
AI 러다이트는 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가 너무 일방적으로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새 기술이 문을 두드리는 것은 괜찮다. 다만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서 “이게 혁신입니다”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들어오려면 신발은 벗고, 누구 집인지 확인하고, 밥상 위에 있는 반찬이 누구 것인지 정도는 물어봐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저항이다. 망치를 들기에는 데이터센터가 너무 크고, 서버는 너무 멀다. 대신 사람들은 문장 하나를 붙잡는다. ‘사전 동의.’ ‘정당한 보상.’ ‘AI 사용 고지.’ ‘인간의 최종 판단.’
낭만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밥벌이는 원래 낭만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