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기뻐하기

코스피가 7000을 넘은 날, 사람들은 조용히 화장실에서 주식 앱을 열었다. 계좌는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무표정해야 했다. 돈 번 기쁨은 언제나 작게 숨겨야 품위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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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뻐하기

오늘 코스피가 7000을 넘었다. 국가적 경사다. 한국거래소 전광판은 축제처럼 빛났고, 언론은 '꿈의 7천피'라는 말을 쏟아냈다. 꿈이라기엔 숫자가 너무 크고, 현실이라기엔 내 계좌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했다. 지수는 7384.56에 마감했다는데, 이상하게 내 앱 속 몇몇 종목은 그 소식을 못 들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주식시장이 오른 날의 인간은 조금 너그러워진다. 평소 같으면 편의점에서 2+1을 따지던 사람이 오늘은 그냥 정가로 물을 산다. 카카오톡 말투도 관대해진다. "ㅇㅇ" 대신 "응 좋아"라고 보낸다. 세상이 나를 부자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경제라는 거대한 강물의 방향을 얼추 맞힌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 들뜬 감정을 어디에 둘지가 어렵다. 코스피가 7000을 넘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뉴스니까. 그런데 "내 것도 올랐다"는 말은 쉽게 꺼내기 어렵다. 말하는 순간 나는 투자자가 아니라 기쁨을 참지 못한 사람, 정확히는 상대가 "얼마나 올랐는데?"라고 물어봐주길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그 질문이 나오면 겸손한 얼굴을 해야 한다.

"아니 뭐, 시드가 워낙 작아서."

사실 큰돈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람은 3만 7000원만 벌어도 자랑하고 싶다. 점심값 세 번이 생겼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품위를 지켜야 한다. 돈을 잃은 이야기는 인간적이지만, 돈을 번 이야기는 조금 껄끄럽다. "나 물렸어"는 술자리 안주가 되지만, "나 수익 났어"는 갑자기 술과 안주를 내가 계산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종일 이렇게 빙빙 돌려 말했다.

"오늘 장 미쳤더라."
"반도체가 진짜 대세는 맞네."
"나도 예전에 조금 사둔 게 있긴 한데."

여기서 '조금'은 나의 천박한 속내가 은근슬쩍 드러난 장치다. 정말 조금이면 말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는 단어는 자랑을 겸손으로 포장하는 얇은 한지 같다. 속이 다 비친다. 하지만 모두가 못 본 척해준다. 자기도 언젠가 써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건 아직 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식 앱에 찍힌 수익은 내 돈 같지만, 동시에 남의 집 강아지처럼 불안하다. 분명 내 품에 안겨 있는데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다. 오늘 7000을 넘었다고 내일도 웃으라는 법은 없다. 자랑하는 순간 시장은 귀신같이 듣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니킥을 날린다. "어제 기분 좋았니?"

그래서 코스피 7000의 날에도 우리는 완전히 기뻐하지 못한다. 너무 기뻐하면 천박해 보이고, 너무 담담하면 사실 별로 못 산 것 같다. 많이 오른 사람은 입을 닫고, 적게 오른 사람은 더 닫는다. 안 오른 사람은 뉴스를 끈다. 지수는 역사적 고점을 쓰는데, 인간은 각자 자기 계좌 앞에서 차마 남에게 보여주기 힘든 표정을 짓는다.

오늘 회사 화장실은 유독 붐볐다. 아무도 없는 칸 안에서 조용히 증권 앱을 여는 사람들. 괜히 수익률 화면을 캡처했다가 바로 지우는 사람들. 단톡방에 올릴까 말까 하다가 "오늘 장 좋네"까지만 쓰고 멈춘 사람들. 인류는 달에 갔고 코스피는 7000을 넘었지만, 수익률 자랑을 품격 있게 하는 방법을 아직 발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조금 기뻐해도 된다. 티 내지 않고, 크게 말하지 않고, 괜히 저녁 메뉴를 한 단계 올리는 정도로. 김밥을 사려다 돈가스를 먹고, 아메리카노 대신 라테를 마시고, 장바구니에 오래 있던 양말을 결제하는 정도로. 그 정도는 기쁨을 만끽해도 된다.

코스피는 7000을 넘었다.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닌다.
주식이 내 인생을 바꾸진 않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덜 초라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