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패스에 긁히는 사회
놀이공원에서 누가 옆 통로로 쓱 지나갈 때, 우리는 잠깐 자본주의의 민낯을 본다. 돈 낸 사람이 먼저 탄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이 규칙이 어디까지 따라와도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놀이공원 줄에 서면 인간은 잠시 평등해 보인다. 초등학생도, 아버지도, 막 사귄 커플도, 할 말 떨어진 커플도 같은 난간을 붙잡고 조금씩 앞으로 간다. 한 칸 움직이면 희망이 생기고, 멈추면 문명에 회의가 든다. 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잔인하다.
그런데 옆 통로로 누군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바코드만 찍고 들어간다. 매직패스다. 이름도 훌륭하다. 자본주의가 본명을 감추고 싶을 때 늘 이런 이름을 붙인다. 매직, 프리미엄, 익스프레스, 스페셜.
매직패스에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일은 자본주의에서 새롭지 않다. 비즈니스석이 그렇고, 호텔 라운지가 그렇고, 잘 잡히는 택시 호출이 그렇다. 자본주의는 모두 같은 결과를 얻자는 약속이 아니라, 차이를 욕망하게 만드는 체제다. 놀이공원의 매직패스는 자본주의의 오류가 아니라 정직한 축소판이다.
매직패스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새로워서가 아니라 너무 선명해서다. 평소 자본주의는 '고객 경험 향상', '선택권 확대' 같은 수식어로 자신을 세련되게 숨긴다. 그런데 놀이공원에서는 설명이 너무 간단하다. 저 아이는 기다리고, 저 아이는 먼저 탄다. 이유도 단순하다. 저쪽 부모가 돈을 더 냈다. 이보다 훌륭한 경제 교육이 있을까. 진정한 놀이교육이다.
문제는 매직패스가 들어가면 안 되는 줄의 경계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게 모든 줄에 가격표를 붙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롤러코스터 줄은 돈으로 줄여도 된다. 마음에는 좀 안 들어도 사회의 뼈대를 무너뜨리진 않는다. 그러나 응급실 순서, 재판 속도, 아이의 출발선, 노동자의 안전까지 같은 방식으로 줄을 세울 수는 없다.
미국을 보면 이 경계가 흐려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현금 보석금 제도에서는 같은 혐의여도 돈 있으면 집에 가고, 없으면 판결 전부터 갇힌다. 컨시어지 의료는 연회비를 낸 사람에게 긴 진료 시간을 판다. 대학에는 부모 이름이 열어주는 문이 있다. 산불이 번지면 사설 소방대가 보험 든 집만 골라 지키러 달려간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말한다. "선택은 고객님의 자유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선택지를 사고, 어떤 사람은 가격표만 본다.
돈이 더 넓은 좌석을 사는 건 자본주의다. 그러나 돈이 더 빠른 재판, 더 빠른 치료, 더 안전한 집을 사기 시작하면, 그것은 시장의 활력이 아니라 시민권의 차등화다.
놀이공원에서 아이가 묻는다. "왜 저 사람들은 먼저 들어가?"
어른은 잠시 망설인다. "돈을 더 냈으니까"는 너무 솔직하고, "다른 표를 샀어"는 너무 비겁하다. 결국 적당히 얼버무린다. "원래 그런 거야."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다.
다만 좋은 사회는 한 문장을 덧붙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모든 줄이 그래도 되는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