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네타냐후를 이미 알고 있다

네타냐후를 히틀러라고 부르는 것은 도덕적 규탄에 가깝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해부해보면 그는 박정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안보를 앞세워 장기 집권을 정당화하고, 국가의 불안을 자신의 통치 기반으로 바꿔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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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네타냐후를 이미 알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를 우리는 너무 오래 그냥 이스라엘 총리로만 알고 있다. 뉴스 속에서 그는 늘 전쟁 뒤에 서 있었고, 미사일 지도 옆에 서 있었고, 성명을 읽고 있었다. 요즘은 이란 전쟁의 배후 인물로 현대판 히틀러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경멸적인 표현은 없다.

네타냐후는 단순한 강경파가 아니다. 그는 불안을 권력으로 바꾸는 데 유난히 능한 사람이다. 텔아비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했고, 특수부대 경력과 형의 죽음, 영어권 엘리트의 감각, 안보 담론을 다루는 기술을 한 몸에 묶어 정치인으로 완성됐다. 그는 이스라엘이 주변 중동 국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준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총리라기보다, 한동안 거의 이스라엘의 긴장 그 자체처럼 기능했다.


네타냐후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있다. 바로 박정희다.

우연히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같은 해에 건국했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서 가장 오래 권력을 쥔 지도자​다. 박정희의 실제 집권 기간은 1961년 5·16 군사정변부터 1979년 10월 26일 피살까지 18년 5개월이다. 네타냐후는 세 번에 걸친 총리직(1996~1999, 2009~2021, 2022~현재)으로 2026년 4월 현재 약 18년 반을 기록 중이다.

군인의 몸, 정치인의 언어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거친 직업군인이었다. 군복을 벗고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그의 권력 언어는 끝까지 군대식이었다. 반공, 안보, 총력체제. 위기가 없으면 만들었고, 위기가 있으면 키웠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 출신이다. 1976년 우간다 엔테베 공항의 인질 구출 작전에서 형 요나탄이 전사했다. 그 죽음은 네타냐후의 평생을 관통하는 서사가 됐다. 그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테러와 싸우는 집안'의 생존자로 미국 언론에 등장했다. 군인의 이력이 정치적 자산이 된 방식이 박정희와 판박이다.

불안과 공포

두 사람의 진짜 재능은 공포를 조직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대신, 그들의 불안을 더 정확히 명명하고 체계화하는 능력. 민주주의 사회에서 드문 재능이다.

박정희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사회에서 북한의 위협을 끊임없이 전면에 세웠다. 위협이 실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통치의 정당성으로 변환되는 방식은 매우 정교했다. 긴급조치, 유신, 계엄. 위기가 클수록 그의 권력도 커졌다.

네타냐후는 수십 년에 걸쳐 이란 핵 위협을 이스라엘 정치의 핵심 의제로 유지했다. 테러가 터지고, 하마스가 위협이 되고, 이란이 핵 문제로 떠오를수록 그는 약해지기보다 오히려 불가결한 존재가 됐다. 이란의 위협이 살아 있는 한,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도를 구부리는 방식

박정희는 헌법을 세 번 손댔다. 삼선 개헌, 유신헌법, 긴급조치. 매번 명분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국가의 근본 규칙을 바꿨다.

네타냐후는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그의 정부가 추진한 사법 개혁은 사실상 같은 효과를 노렸다. 대법원이 정부 결정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은 자신의 부패 재판이 본격화되던 때였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거리를 채웠고, 개혁은 일부 후퇴했지만 사법부를 향한 압박은 계속됐다. 이스라엘 법에는 총리의 사임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 기소만으로는 직을 잃지 않는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으로 임기 제한을 없앴듯, 네타냐후는 이 법적 공백을 정확히 알고 활용했다.

연립과 동맹의 기술

박정희는 공화당이라는 당을 직접 만들었고, 군부와 관료 집단을 촘촘히 엮어 자신의 통치 기반으로 삼았다. 필요하면 타협했고, 동맹을 만들었다가 깨고, 측근을 쓰다가 버렸다.

이스라엘은 전국 단일 비례대표제를 쓴다. 정당 득표율로만 의석을 나누기 때문에 의회가 늘 잘게 쪼개지고, 어떤 정당도 단독 과반을 얻기 어렵다. 총리가 되려면 반드시 여러 군소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네타냐후는 이 구조를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하레디 등 초강경 종교 민족주의 정당들을 끌어들여 연립정부를 만들었고, 그 대가로 그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 박정희가 군부와 관료를 다룬 방식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재판과 전쟁

네타냐후는 현재 뇌물·사기·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2019년 기소됐고, 재판은 2020년에 시작됐다. 2024년 12월, 현직 이스라엘 총리로서 역사상 최초로 직접 증언대에 섰다. 2026년 4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식으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대기업 회장에게 유리한 규제를 해주는 대가로 자기 관련 기사를 우호적으로 써달라고 요구하고, 유력 언론사 사주와 자기에게 유리한 보도를 거래했다는 혐의다. 현금 대신 기사, 청탁 대신 프레임, 봉투 대신 헤드라인. 전형적인 21세기식 부패다.

박정희는 이런 재판을 받지 않았다. 그는 법정에 서는 대신 측근의 총에 맞았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중앙정보부와 관료 체계가 얼마나 많은 부패와 공권력 남용을 자행했는지는 이후 수십 년간 역사가 말해준다.

지금의 네타냐후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 재판은 진행 중이고, 연립 파트너들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으며, 전쟁은 당초 약속한 목표들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인질 가족들의 분노, 반정부 시위, 동맹국들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기대는 유일한 수단은 전쟁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재판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총리'의 외피를 유지할 수 있다. 박정희가 긴급조치와 유신으로 정치적 위기를 국가 비상사태로 전환했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같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고 선거를 통제했다. 네타냐후는 실질적인 민주주의 속에서 선거로 이기고 졌다. 박정희는 경제 개발을 직접 국가 프로젝트로 밀어붙였다. 네타냐후는 안보 담론을 전면에 세우되 경제는 시장에 맡겼다.

그러나 두 사람을 관통하는 공통의 문법은 뚜렷하다. 위기 없이는 권력 없다. 불안이 커질수록 자신의 존재 이유도 커진다는 정치의 논리. 제도의 빈틈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빈틈으로 집권을 연장한다는 생존 전략. 그리고 측근을 쓰다가 버리고, 동맹을 맺었다가 깨고,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지독한 생존 본능.

박정희는 결국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측근의 총에 맞아 끝났다. 네타냐후의 끝은 어디일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오래 살아남은 사람일수록 끝이 올 때 갑작스럽다는 것은,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준 전형적 패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