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의 열흘

대전의 늑대 한 마리가 도심을 열흘간 떠돌다 돌아온 자리는 원래의 그 사육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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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구의 열흘

지난 4월 8일 오전, 대전 오월드의 사파리 구역에서 두 살짜리 수컷 늑대 한 마리가 사라졌다. 탈출 방법은 거창하지 않았다. 땅을 팠다. 늑대가 으레 그러하듯, 굴을 파는 본능에 따라 철조망 아래를 뚫고 담장을 넘었다. 그렇게 '늑구'는 도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열흘은 이 나라 전체가 늑대 한 마리를 추적하는 시간이었다.

수색대가 드론을 띄웠고, 경찰과 소방이 합동으로 투입됐다. 인근 학교가 휴업했다.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사살하지 말 것.

4월 17일 새벽, 늑구는 안영 나들목 인근 수로에서 마취총에 맞아 생포됐다. 건강 이상 없음. 다시 오월드로. 해피엔딩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동물원의 기원

동물원은 오래된 제도다. 그 기원은 기원전 3500년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고대 로마에서는 검투사 훈련과 유희를 위해 동물을 가뒀다. 근대적 의미의 동물원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부유층이 탐험가를 시켜 희귀 동물을 잡아다 전시하던 것이 공공 기관으로 발전했다. 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추가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한국 최초의 동물원은 1909년 창경원이다. 일제가 조선의 왕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만든 것이었다.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망국의 왕을 동물원이나 구경하며 세월을 보내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시각도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114개의 크고 작은 동물원이 운영 중이다.

문제는 이 114개 중 상당수가 '동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캡스(Captive Animal's Protection Society)의 조사에 따르면 호랑이와 사자는 원래 서식지 대비 약 1만 8000배 좁은 공간에서, 북극곰은 100만 배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나타나는 것이 '정형행동'이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이상행동. 심리적 고통의 징후다.

"늑구의 탈출은 특정 개체의 일탈이 아니었다. 야생성 자체가 억눌린 환경 속에서 드러난, 예정된 균열이었다."

늑구가 땅을 판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사건 직후 논평을 냈다. "굴을 파는 습성을 지닌 종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며, "이는 사육 환경이 동물의 행동 특성과 야생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나쁜 개체가 탈출한 것이 아니다. 늑대가 늑대답게 행동했을 뿐이다.

동물원은 꼭 필요한가

전 세계적으로 동물원에 대한 재검토는 이미 진행 중이다. 가장 선진적인 사례는 코스타리카다. 2024년 7월, 코스타리카 정부는 10년에 걸친 법적 분쟁 끝에 공영 동물원을 공식 폐쇄했다. 수도 산호세의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 등 2개 시설이 문을 닫았고, 동물 287마리는 재활 보호센터로 이전됐다.

영국에서는 녹색당이 동물복지 정책으로 전통적인 동물원 폐지를 공식 강령에 담았다. 오락적 전시 중심의 시설을 없애고, 야생 복귀가 불가능한 동물을 위한 보호 시설이나 멸종위기종 번식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자는 취지다. 여론도 움직이고 있다. 2024년 YouGov 조사에서 영국인의 5명 중 4명 이상이 '리와일딩(rewilding)', 즉 생태계 야생화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리와일딩은 동물을 시설에 가두는 대신 서식지 자체를 복원하는 접근법이다. 영국에서는 비버, 스라소니, 흰꼬리수리 등 멸종됐거나 사라진 종의 재도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일부는 '게릴라 리와일더'들이 법 바깥에서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의 주류 방향은 전면 폐지보다는 '동물원의 역할 전환'이다. 이미 일부 동물원들은 행동풍부화(Behavioral Enrichment)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관람객이 동물에게 직접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리 격리나 망원경 관람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동물을 전시하는 기관에서, 동물을 연구하고 보전하는 기관으로의 전환이다.

생츄어리

이러한 맥락에서 '생츄어리'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생츄어리는 단순한 보호소가 아니다. 동물원이 인간의 욕구를 위해 동물을 전시하는 곳이라면, 일반 보호소가 임시 거처라면, 생츄어리는 동물이 자연사할 때까지 머무는 영구적 안식처다. 관람 수익이 목적이 아니다. 동물의 복지가 유일한 존재 이유다. 그래서 종종 '동물들의 요양원'이라 불린다.

생츄어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야생동물 생츄어리와 농장동물 생츄어리다. 야생동물 생츄어리의 대표 격인 미국 TWAS(The Wild Animal Sanctuary)는 1980년 설립됐으며, 동물원과 불법 사육시설에서 구조된 사자, 호랑이, 곰, 늑대 들을 드넓은 초원에서 보호한다. 2018년 한국 어린이대공원의 사자 가족이 이곳으로 왔다. 콘크리트 8평 격리 공간에서 미국 콜로라도의 초원으로.

늑구 같은 동물이 가야 할 곳이 있다면, 그런 공간이다.

우리의 현실

한국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정부는 사육곰 산업 종식을 선언했고, 올해 1월 1일부로 곰 사육이 공식 금지됐다. 1981년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정부가 장려하기 시작한 그 산업이 40년 만에 끝난 것이다. 2023년부터는 동물원 운영이 허가제로 전환돼 2028년까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폐업해야 한다.

그러나 선언과 현실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사육곰 생츄어리가 건립되고 있지만, 수용 가능 개체 수는 119마리로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나머지 곰들은 여전히 농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수용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정부가 시민단체와의 협의 없이 맹목적으로 보호에만 방점을 뒀다"고 비판한다. 민간 단체인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150마리를 수용할 생츄어리를 계획하고 있지만, 모인 자금은 1억 원. 필요한 예산의 50분의 1이다.

법적 토대도 취약하다. 한국 민법은 아직도 동물을 '물건'으로 분류한다. 독일, 영국, 스위스는 법적 보호 대상 동물을 반려동물을 넘어 모든 동물로 확대했지만, 한국은 동물의 법적 지위 향상이 '사회적 공감대 부족'을 이유로 미루어지다, 얼마 전 입법 논의가 겨우 이뤄졌다.

"생츄어리는 이상이 아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그것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늑구가 남긴 질문

대전충남녹색연합의 논평은 조심스러운 경고로 끝을 맺었다. "이번 사건이 지난 탈출 사고들이 그랬듯 한때의 '탈출 이벤트'처럼 화제만 되고, 동물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의의 시작이 되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오월드는 2018년에도 퓨마 '뽀롱이'가 탈출했다. 그때도 비슷한 논의가 잠깐 일었다. 그리고 잠잠해졌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 국민적 관심의 밀도가 달랐다. 대통령이 글을 올렸고, 포획 방법을 두고 전문가 자문이 이뤄졌다. 시민들이 '사살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사람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상황에서 동물이 죽어선 안 된다는, 윤리적 직관이다.

그 직관을 제도로 만드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늑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두꺼운 철조망이 아니다. 굴을 파도 괜찮을 만큼 넓은 땅이다. 땅을 팔 필요조차 없을 만큼의 자유가 주어진 공간이다.

늑구는 지금 오월드의 사육장 안에 있다. 사건은 해결됐다. 정말 해결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