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기술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아침에 카페에 배달된 우유를 누가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지는,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유는 상하지만 않으면 되고, 가게는 어쨌든 돌아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에는 꼭 그런 사소한 장면 하나로 사람의 내면이 들통나는 순간이 있다.
요즘 갑질은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컵을 던지지도 않고, 테이블을 치지도 않고,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건 너무 구식이다. 너무 올드하고, 너무 티가 난다. 요즘 갑질은 훨씬 세련됐다. 말투는 부드럽고, 문장은 정중하고, 표정은 웬만하면 관리된다. 대신 내용이 무섭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상대를 작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현대적 갑질의 핵심이다.
첫 번째 원칙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대신 실망하면 된다. “화가 난다”보다 “많이 아쉽네요”가 훨씬 품위 있어 보인다. “이렇게 하시면 곤란합니다”보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네요”가 훨씬 덜 공격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대놓고 혼나는 것보다, 실망의 대상이 되는 쪽이 더 숨 막힐 때가 많다. 화는 순간적이지만, 실망은 인격평가처럼 들려서다.
그다음 단계는 자기 기분을 원칙처럼 말하는 것이다. “많이 불쾌하네요”라고 하면 그냥 감정 표현이 된다. 하지만 “이건 상식 아닌가요?”라고 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내 기분은 보편적 기준이 되고, 상대는 상식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건 꽤 효율적이다. 굳이 욕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도 길게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상식을 호출하는 거다. 한국 사회에서 상식만큼 든든한 방패도 드물다. 사실은 “나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요”에 불과한 말도, 상식이라는 포장을 씌우면 꽤 단단한 요구처럼 보인다. 주관을 객관화하는 고급 기술이다.
또 하나의 유용한 방법은 명령하지 않고 질문하는 방식이다. “이거 해주세요”는 다소 노골적이다. 하지만 “이건 원래 이렇게 해주시는 거 아닌가요?”는 훨씬 우아하다. 형식은 질문인데, 실제로는 질문이 아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네, 맞습니다” 말고는 빠져나가기 어렵다. 질문의 형식을 빌리면 압박은 줄고, 부담은 남는다. 그래서 갑질 고수들은 지시하지 않는다. 되묻는다. “보통은 여기까지 해주시지 않나요?” “다른 곳은 다 이렇게 하던데요?” “이 정도는 기본 서비스로 알고 있었는데요?” 참 신기하다. 말끝은 부드러운데, 사람은 점점 쪼그라든다.
현대적 갑질의 꽃은 역시 평가다. 사람을 직접 깎아내리면 문제가 된다. 대신 태도를 평가하면 된다. “불친절하시네요.” “프로답지 않네요.” “책임감이 없어 보입니다.” 이쯤 되면 사실 내용은 인신공격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표현은 꽤 점잖다. 그래서 본인도 덜 찔린다. 나는 욕한 적 없고, 그저 업무 태도에 대해 피드백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갑질이란 참 이상하다. 직접 상처를 줬다는 사실보다, 나는 정당한 피드백을 했을 뿐이라는 자기 해명이 동반돼야 한다.
요즘 같은 플랫폼 시대에는 리뷰와 별점을 활용한다. 예전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면, 요즘은 플랫폼을 쓴다. “별점은 사실대로 남기겠습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분들도 아셔야 할 것 같네요.” “공론화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여기까지 오면 사실상 거의 협상이다. 아니 협박이다. 나는 아직 점잖다. 하지만 얼마든지 점잖지 않아질 수도 있다는 메시지. 대놓고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충분히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 요즘 세상은 참 편하다. 예전 같으면 버럭 해야 했을 일을 이제는 차분하게 작성하면 된다.
이 기술들의 진짜 무서운 점은, 대부분이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기는 감정적으로 굴지 않았고, 최대한 예의 있게 말했고, 할 말만 했다고 믿는다. 실제로도 겉으로는 그렇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욕을 하지 않았고, 존댓말도 썼다. 그러니 스스로 보기에 자기는 갑질을 한 게 아니라 기준을 말한 사람이다. 하지만 기준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을 기준이라고 부르는 순간, 상대는 그것을 못 맞춘 사람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관계는 순식간에 수직이 된다.
사실 갑질은 대단한 악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개는 아주 사소한 착각에서 시작된다. 내가 자주 받아본 배려를 원래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는 착각, 내 편의를 기준으로 삼는 착각, 그리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쉽게 부족한 사람으로 읽어버리는 착각. 그래서 더 민망하고, 더 흔하고, 더 우리 이야기다.
우유는 그저 문 앞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잠깐의 불편으로 끝났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 하나를 평가할 자격이 생겼다고 느끼게 했다. 갑질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된다. 상대를 크게 함부로 모욕할 때만이 아니라, 내 작은 불편 하나로 타인의 태도와 수준과 인격까지 재단해도 된다고 믿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순간은, 솔직히 말해,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음 속에 꿈틀대는 갑질의 욕구를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SNS는 피하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