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여력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제도가 너무 가혹해서가 아니다. 몇만 원의 상환액조차 버거워진 청년의 삶, 그 얇아진 생활의 바닥이 만든 현실이다.
대학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전체 대출자 중 18%. 대충 5명 중 1명은 학자금 대출을 연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사람들은 대개 같은 생각을 한다. 너무 높은 금리, 너무 빡빡한 상환 조건, 너무 냉정한 제도. 한국의 많은 문제가 늘 그렇듯, 이번에도 먼저 제도를 의심하게 된다. 제도가 사람을 몰아붙였고, 청년은 또 그 밑에서 무너졌다고.
그런데 이 제도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의외로 따뜻하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은 그렇게까지 잔인한 제도가 아니다. 소득이 없으면 갚지 않아도 되고, 소득이 생겨도 전부가 아니라 기준을 넘긴 부분의 일부만 상환한다.
가령 연봉이 2850만 원 정도가 되면 상환 의무가 생긴다. 소득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상환은 무기한 유예된다. 상환 의무가 생기면 초과되는 금액에 20%만 상환하면 된다. 대략 매 월 몇 만원 수준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 정도는 갚을만하지 않나” 싶은 구조다. 빌린 돈을 갚는 건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액수만 놓고 보면 대체 얼마길래 못 갚느냐고. 몇만 원, 많아야 십몇만 원 수준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청년의 삶에서 몇만 원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순서의 문제다. 월세 다음, 관리비 다음, 교통비 다음, 통신비 다음, 카드값 다음에도 살아남는 돈이어야 비로소 학자금 상환이 된다. 문제는 지금의 청년에게 그 ‘다음’이 너무 쉽게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상환액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비어 있는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몇만 원은, 액면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빚이 무거운 게 아니라 삶이 얇아진 탓이다.
이 제도가 작동하려면 간단한 전제가 하나 필요하다. 취업을 하면, 그리고 소득이 생기면,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 한때는 그 문장이 아주 당연하게 들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 현실에서 취업은 더 이상 안정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첫 취업은 늦어지고, 입사해도 오래 버티기 어렵고, 이직과 공백은 잦다. 명함은 생겼는데 통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제도는 ‘소득이 생겼다’고 판단하는데, 당사자는 ‘살 만해졌다’고 느끼지 못한다. 바로 그 차이에서 체납이 생긴다. 제도는 상환 가능자라고 부르지만, 현실은 상환 능력, 정확히는 여력이 없는 사람이다.
물가상승률 2%. 숫자만 보면 크게 절망스럽지 않다. 그러나 절망은 늘 더 구체적인 데서 온다. 월세가 조금 오르고, 점심값이 조금 오르고, 편의점에서 무심코 집어 드는 것들이 조금씩 비싸지는 식으로. 큰 충격은 아니지만, 그런 작은 상승은 사회초년생의 통장에서 가장 먼저 학자금 상환분을 밀어낸다. 이 장면이 게으름이나 무책임으로 잘못 번역된다는 점이다. “그 돈도 못 내?”라고 말하는 순간, 질문은 쉬워지지만 현실은 지워진다. 실은 못 내는 게 아니라, 내고 나면 비어버려서 그렇다.
그래서 학자금 대출 연체율 사상 최고라는 통계는, 한국 청년의 삶이 어디에서 무너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정직한 숫자다. 한 번 밀린 상환은 다음 달의 부담이 되고, 다음 해의 체납이 되고, 결국 ‘이 사람은 원래 잘 못 갚는 사람’ 그러니까 신용불량자로 만든다. 하지만 그 시작점에는 대단한 소비도, 무절제한 생활도 없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삶이 있다. 방세를 내고,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가끔 커피를 사 마시는 수준의 삶. 그 정도 삶을 유지하고 나면 더 이상 남는 것이 없는 사회가 문제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이 문제의 결론은 ‘제도가 나쁘다’가 아니다. 제도는 오히려 꽤 상식적으로 설계돼 있다. 소득이 없으면 기다려주고, 소득이 생기면 조금씩 갚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 설계로도 버티기 힘든 한국 청년의 현실이다. 제도는 아직도 “취업하면 갚을 수 있다”는 시대의 문장 위에 서 있는데, 현실은 이미 “취업해도 빠듯하다”는 시대로 건너와 있다. 그러니 지금 무너지는 것은 정책의 논리가 아니라, 그 논리가 기대고 있던 생활의 바닥이다.
정책도 조금은 더 포용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갑자기 한 번에 체감되는 고지보다 월별로 더 잘게 나누고, 기준을 막 넘는 구간에는 더 완만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이직과 공백이 많은 청년에게는 유예와 분할을 훨씬 쉽게 열어줘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문제를 “청년이 왜 이것도 못 갚느냐”의 프레임에서 꺼내는 일이다.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사상 최대라는 말은 사실 다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은 빚을 안 갚는 세대가 아니라, 갚고 나면 삶이 남지 않는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