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퇴근하고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 끝에 걸터앉아, 세탁물은 그대로 둔 채 한참 휴대폰만 내려다보는 시간. 마흔은 그런 식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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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즈음에

어린 시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했다. 아, 사람 마음을 참 잘 썼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노래 같았다. 좋긴 좋은데 아직은 내 얘기는 아닌 것 같은. 술을 얼큰하게 마시고 취했을 때나 뭔가 마음을 울리는. 서른이라는 나이는 이상하게 늘 조금 먼 데 있었다. 막상 서른이 됐을 때도 그랬다. 생각보다 별일 없네 싶었다. 그냥 어제의 연장 같았고, 여전히 나는 나였다.

마흔은 좀 달랐다. 마흔은 갑자기 오는 나이가 아니다. 아주 천천히, 별 티 안 나게, 생활 속으로 스며들듯 온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 느끼는 것도 아니고, 생일 케이크 초를 불다가 실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는 잘 안 느껴진다. 대신 별것 아닌 순간에 온다. 예전보다 회복이 늦다는 걸 알게 될 때, 오랜만에 친구 이름을 떠올리다가 연락한 지 너무 오래됐다는 걸 깨달을 때, 부모님 얼굴에서 갑자기 나이를 발견할 때. 그런 순간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진다.

서른이 ‘벌써?’의 나이라면, 마흔은 ‘진짜네’의 나이다. 서른에는 아직 뭐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말고 다른 삶도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워도 한편으로는 좀 가볍다. 아직은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마흔쯤 되면 알게 된다. 인생이 꼭 망가진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마음대로 다시 펼칠 수 있는 종이도 아니라는 걸. 접힌 자국이 생겼고, 그 자국대로 내가 살아왔다는 걸.

예전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좋은 줄 알았다. 연락처에 이름이 많고, 약속이 빽빽하고, 주말이 늘 누군가로 채워져 있는 게 괜히 든든했다. 그런데 마흔 즈음이 되면 관계도 조금 달라진다. 꼭 많이 만나야 할 필요가 없고, 억지로 잘 만나지지도 않는다는 걸. 싸운 것도 아니고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서로의 생활이 달라져서 뜸해진다. 누구는 육아로 바쁘고, 누구는 일이 너무 많고, 누구는 타지에 있고, 누구는 이제 안부만 묻는 사이가 된다. 예전 같으면 서운했을 일들이 이제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예전엔 대충 자도 괜찮았고, 좀 무리해도 금방 돌아왔는데 이제는 아니다. 피곤이 쌓이는 속도는 빠르고, 풀리는 속도는 느리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데 마음은 아직 예전인 척할 때가 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안 괜찮고,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꼭 그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쯤 되면 조금 알게 된다. 무조건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쉬어야 할 때 쉬는 것도 살아가는 기술이라는 걸.

마흔이 되면 꿈이 사라진다기보다, 꿈의 모양이 바뀐다. 예전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잘나가고 싶고, 더 멋있어 보이고 싶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뭔가를 갖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다. 무너지지 않는 하루, 너무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는 저녁, 크게 아프지 않은 몸,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중요해진다. 젊을 때는 이런 걸 너무 소박해서 목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처럼 여겼는데, 막상 살아보니 이런 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마흔 즈음에는 청춘이 끝났다는 생각보다, 내가 이제야 생활의 무게를 제대로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보다 덜 들뜨고 덜 상처받는 대신, 쉽게 기뻐하지도 못한다. 좋은 일이 있어도 잠깐이고, 걱정은 길게 남는다. 그렇다고 매일 우울한 건 아니다. 그냥 감정의 결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날카롭던 것이 무뎌지고, 가볍던 것이 조금 깊어진다. 예전처럼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고,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왠지 포기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포기라기보다 정리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안 되는 걸 빨리 아는 대신, 나한테 정말 중요한 것도 예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아니까 오히려 남길 것을 고르게 된다. 사람도, 일도, 마음도 그렇다. 서른에는 넓게 벌려놓고 살았다면, 마흔에는 조금씩 추려가며 산다.

아, 인생이 원래 이런 거였구나. 특별한 날보다 별일 없는 날이 훨씬 많고, 큰 기쁨보다 작은 책임이 더 자주 오고, 뜨겁게 사랑하는 시간보다 묵묵히 견디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것. 젊을 때는 그걸 좀 서글프게 느끼지만, 마흔쯤 되면 그게 꼭 초라한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렇게 살아낸 날들이 결국 나를 만들었으니까.

나는 예전보다 덜 빛나지만, 조금 더 편안해졌다고. 덜 뜨겁지만,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잃은 것도 많지만 그만큼 덜 흔들리게 된 것도 있다고. 청춘은 분명 멀어졌는데, 대신 예전에는 몰랐던 마음의 모서리들이 조금 닳아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아주 조금은 알게 됐다고.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별일 없이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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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y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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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Welcome to the Fortyverse,
young도 old도 아닌 그 어딘가의 world.
누가 뭐래도 나는 나,
이게 내 리듬, 내 멜로디, 내 roll.

출근길엔 에어팟, 주말엔 골프
감성은 어제 같고, 무릎은 노크
퇴근은 늦지만 마음은 early
젊음은 갔어도 vibe은 surely
불빛 아래서 젊은 척 one pose
댓글은 냉정해 “형, 그건 좀 close”
그들의 눈빛은 조금 서늘
그래도 내 life는 여전히 colorful

“아저씨 아닌데요” 말은 하면서
내 표정이 이미 다 말해줬어
젊음은 스쳐 갔지만
센스는 여전히 현역, 그게 나

이건 포티버스, yeah we still alive
조롱도, 밈도, 다 groove로 drive
어색한 나이, 그게 또 style
살짝 구려도 웃겨, that’s my vibe
이건 포티버스, laugh it off tonight
삶이란 건 irony and light
Young or old, doesn’t matter right
우린 그냥 살아, in this Fortyverse life

2030 boys say, “형, 너무 TMI”
근데 걔넨 아직 모를 걸, 이 mid-life
지갑은 두꺼워, 마음은 얇아
욕심은 식고, 유머만 남아
술자린 줄었고, 커피는 늘었지
감성팔이보단 현금이 솔직히 낫지
그래도 mirror 속 내 눈빛은 clear
“아직 괜찮다”는 자기최면의 cheer

세상은 빠르게 swipe,
나는 그 속도에 ride.
어제의 꼰대가 오늘의 trend,
내 삶도 해시태그처럼 bend.

이건 포티버스, yeah we still alive
조롱도, 밈도, 다 groove로 drive
어색한 나이, 그게 또 style
살짝 구려도 웃겨, that’s my vibe
이건 포티버스, laugh it off tonight
삶이란 건 irony and light

Young or old, doesn’t matter right
우린 그냥 살아, in this Fortyverse life


누가 뭐래도 괜찮아,
이 나이의 리듬은 slow but deeper.
유행은 바뀌지만, 나의 시간은 unique.

Welcome to my world — the Fortyve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