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자본
매직패스에 긁히는 사회
놀이공원에서 누가 옆 통로로 쓱 지나갈 때, 우리는 잠깐 자본주의의 민낯을 본다. 돈 낸 사람이 먼저 탄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이 규칙이 어디까지 따라와도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생활과 소비
운동회 소리가 민원이 되고, 어린이집 울음소리가 항의의 대상이 되고,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거슬리는 시대. 우리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권리를 행사한다. 그럴수록 함께 살아갈 세계는 조금씩 좁아지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점차 퇴보한다.
권력과 자본
코스피가 7000을 넘은 날, 사람들은 조용히 화장실에서 주식 앱을 열었다. 계좌는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무표정해야 했다. 돈 번 기쁨은 언제나 작게 숨겨야 품위가 생긴다.
생활과 소비
우리는 이제 무언가를 사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믿기 전에 검색하며, 지불한 뒤에도 오래 영수증을 바라본다.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마가린은 버터보다 맛이 없고, 인공적이며, 저렴하다. 그래서 늘 의심 받고,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있다.
퇴근하고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 끝에 걸터앉아, 세탁물은 그대로 둔 채 한참 휴대폰만 내려다보는 시간. 마흔은 그런 식으로 온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늘 거기에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우리가 바쁜 척, 못 본 척, 잊은 척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52년이 흘렀다.
"쿨거래 원해요"라는 말은 성격이 시원시원하다는 뜻이 아니다. 당근어는 사투리도 외국어도 암호도 아니지만, 거래를 반복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읽는 현대 잡지
황동만 같은 사람은 실패해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타인의 기쁨과 성취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견디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와 오래 머물수록 그의 자기혐오는 어느 순간 나의 자기의심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하루가 궁금하다. 다만 이제 그 궁금함을 위해 사진을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삶을 작은 무대처럼 꾸미고 싶지는 않다. 2초짜리 장면들로 이어지는 느슨한 안부, 콘텐츠가 되기 전의 일상, 그리고 아직 끊기지 않은 관계의 기척.
1km를 421번. 어떤 한 걸음도 특별히 빠르지 않았다. 다만 어느 걸음도 느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시대의 러다이트는 미래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가 누구의 손으로 누구의 밥벌이를 가져가는지 캐묻는 사람이다.
가족은 아름답다기보다 복잡하다. 사랑과 의무, 미안함과 피로, 다정함과 원망이 한집에 산다.
요즘 물건은 너무 쉽게 늙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무 쉽게 늙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물건은 고장 날 수 있고, 부품은 닳을 수 있다. 닳은 부품을 바꾸고 계속 쓰는 당연함이 왜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까.
국수를 먹으러 갔지만, 결국 국물을 마시고 나온다. 면은 핑계고, 콩물이 본심이다.
더 받은 사람이 아니라, 덜 받은 기분이 문제다. 이미 충분한 사람도, 옆의 기준 앞에서는 쉽게 부족해진다. 만족은 조건이 아니라 거리의 문제다.
우리는 더 쉽게 서로에게 닿게 되었지만, 그만큼 쉽게 사라질 수는 없게 됐다. 한때는 접속을 기다리며 관계를 상상했는데, 이제는 연결된 채로 침묵을 해석한다.
대전의 늑대 한 마리가 도심을 열흘간 떠돌다 돌아온 자리는 원래의 그 사육장이었다.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제도가 너무 가혹해서가 아니다. 몇만 원의 상환액조차 버거워진 청년의 삶, 그 얇아진 생활의 바닥이 만든 현실이다.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