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터 스벅은 안 멋져

도시의 직장인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 마실 곳을 찾아 헤맨다. 어딜 가든 자리가 부족하다. 그럴 때 체념하듯 이렇게 말한다. “그냥 스벅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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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터 스벅은 안 멋져

한때 스타벅스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잠깐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곳이었다. 노트북을 펼치면 괜히 일이 잘될 것 같고, 텀블러를 들면 생활이 조금 정돈된 사람처럼 보였다. 스타벅스는 커피 맛보다 분위기를 먼저 파는 브랜드였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음료만 사지 않았다. 그 공간 안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샀다.

그 시절 스타벅스의 강점은 단순함과 선택권이 묘하게 공존한다는 데 있었다. 메뉴판 자체가 지금처럼 끝없이 길지 않았다. 대신 에스프레소 음료를 중심으로 샷을 추가하고, 시럽을 바꾸고, 우유를 고르고, 온도를 조정하는 식의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했다. 무엇을 파는지는 분명했지만, 어떻게 마실지는 각자 정할 수 있었다. 스타벅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복잡한 브랜드가 아니라 정교한 브랜드처럼 보였다. 중심은 커피였고, 선택은 그 중심을 더 깊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렀다.

지금은 다르다. 메뉴판 앞에 서면 잠깐 멈칫하게 된다. 커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티가 있고, 주스가 있고, 스무디가 있고, 베이커리와 샌드위치와 디저트가 있다. 여기에 계절 한정, 지역 한정, 협업 한정까지 줄지어 붙는다. 한정이라는 단어가 너무 자주 등장하면, 그 말부터 별로 한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커피를 어떻게 마실지를 생각하는 재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스타벅스가 대체 무엇을 파는 곳인지부터 다시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스타벅스는 그저 메뉴가 많은 집이 됐다.

굿즈는 이 변화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엔 자연스러웠다. 텀블러 정도는 괜찮았다. 커피 브랜드가 컵을 파는 일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머그컵, 에코백, 우산, 담요, 캠핑 의자, 캐리어까지 나온다. 스타벅스는 다이소와 경쟁이라도 하려는걸까. 한정판 굿즈가 나올 때마다 줄이 생기고 화제가 되니 회사 입장에서는 성공으로 읽었을 것이다. 맞다. 단기적으로는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다만 그 줄이 길어질수록 스타벅스가 파는 것이 커피인지 굿즈인지 점점 흐릿해진 것도 사실이다.

매장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는 정말 부지런히 열었다. 골목에, 쇼핑몰에, 병원에, 공항에, 휴게소에, 역 근처에.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너무나 합리적인 결정이다. 매장이 늘면 접점이 늘고, 접점이 늘면 매출도 는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반전이 생긴다. 편의점이 왜 편의점이냐고 물으면 답은 간단하다.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접근성을 높이고 일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그 성공 끝에서 어느새 커피집이라기보다 도시의 편의시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편의점은 유용하고, 편리하고, 일상적이다. 필요할 때 들어가면 뭐든 어느 정도 해결된다. 다만 깊은 충성심은 없다. 더 싸고, 더 편하고, 더 빠른 채널이 생기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심하게 옮겨간다. 스타벅스가 지금 겪는 묘한 정체감도 여기서 온다. 여전히 크고, 여전히 유명하고, 여전히 잘 돌아간다. 그런데 예전 같은 충성심은 없다.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선택한다기보다 그냥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선택지가 어떤 방향으로 늘어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전의 커스터마이즈는 커피라는 중심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샷을 더 넣고, 우유를 바꾸고, 시럽을 조절하는 일은 모두 “나는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가”라는 질문 안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확장은 다르다. 커피를 더 깊게 만드는 대신, 브랜드의 외곽을 넓히는 방식으로 늘어났다. 메뉴가 늘고, 굿즈가 늘고, 기능이 늘고, 매장이 늘면서 브랜드는 풍성해졌지만, 동시에 흐려졌다. 커스터마이즈가 중심을 강화했다면, 지금의 품목 확장은 중심을 희석시킨 셈이다.

결국 스타벅스의 문제는 합리성의 과잉에 가깝다. 메뉴를 늘리는 것도 합리적이다. 굿즈를 파는 것도 합리적이다. 매장을 더 여는 것도 합리적이다. 하나하나는 다 맞는 결정이다. 그런데 그 맞는 결정들이 너무 많이 쌓이면, 이상하게도 브랜드는 덜 또렷해진다. 커피를 중심으로 취향을 조정하던 브랜드가, 이제는 이것저것을 잘 파는 편의점이 됐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잘 파는 브랜드는 대체로 설명이 길어진다. 설명이 길어지는 브랜드는 대개 예전보다 덜 선명하다.

스타벅스는 나빠진 게 아니다. 단지 너무 많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너무 많아진 것들은 대개 서로를 빛내기보다 서로를 희석시킨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조금 붓는 건 좋은 아메리카노가 되지만, 계속 붓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