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이사가는 날

익숙한 서점이 자리를 옮기면 사람들은 먼저 아쉬움을 말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새 공간에는 또 다른 기억이 천천히 눌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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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마인드.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2 경교빌딩 3층
유어마인드.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2 경교빌딩 3층

서점이 이사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꼭 아쉬워한다. 예전 공간이 더 좋았다고, 좁았지만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조금 불편해도 그 불편까지 포함해 그 서점의 매력이었다고 회상한다. 이상한 일이다. 더 넓고, 더 밝고, 더 많은 책을 둘 수 있는 공간으로 옮기는데도 반응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말 끝에 축하보다 아쉬움이 먼저 묻어난다.

연희동의 독립서점 유어마인드가 이사를 했다. 같은 동네에서 위치만 바뀌었으니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삭막한 이유는 아닌듯 하다. 새로 옮긴 곳에서 만난 책방지기 이로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사할 때 마다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손님들은 오히려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 법했다. 독립서점은 이상한 공간이다. 카페나 식당, 옷가게는 대체로 넓어질수록 좋아진다. 자리가 많아지고, 동선이 편해지고, 더 쾌적해진다. 그런데 서점, 특히 독립서점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넓어질수록 어딘가 조금 덜, 그 서점 같아지는 순간이 생긴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밀도다. 좁은 공간에는 특유의 응축감이 있다. 몸을 살짝 틀어야 지나갈 수 있는 선반 사이, 계산대 가까이에서 맴돌게 되는 동선, 책을 고르다 무심코 옆 사람이 들여다보는 책등까지 눈에 들어오는 거리. 독립서점에서는 그런 좁음이 단점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 놓인 취향을 더 가까이, 더 진하게 느끼게 한다. 책이 많아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골라 놓은 책이라는 사실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참 간사하다. 이사 직후에는 아쉬워해도 몇 달 쯤 지나면 어느새 익숙해진다. 예전 공간이 더 좋았다고 말하던 사람도 새 공간에서 책을 고르고, 새 계산대 앞에서 결제를 하고, 그렇게 쌓인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공간이 원래부터 그 서점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우리가 붙잡고 싶은 것은 주소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각이다. 기억이 잠깐 끊기는 것이 낯설 뿐, 새로운 기억이 쌓이기 시작하면 사람은 또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건너간다.

게다가 이번에 옮긴 유어마인드의 새 공간을 보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단순히 아쉬움을 부르는 이사라기보다, 뭔가 변화를 꾀하는 이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새 공간은 가운데에 계산대가 있고, 이로 씨가 그 자리에서 업무를 본다. 그 바깥을 따라 벽면에 책들이 둘러서 진열돼 있다. 처음엔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보고 있자니 초밥집이나 바 같은 구조가 떠올랐다. 가운데 사람이 있고, 손님들은 그 주변을 맴도는 형태.

그 구조에서는 책방지기에게 말을 걸기가 훨씬 쉬워진다. 보통 서점은 계산대가 한쪽 구석에 있다. 손님은 책을 다 고른 뒤 마지막에야 그쪽으로 향한다. 말은 결제할 때 잠깐 오가고, 대화는 생략되기 쉽다. 조용히 들어와 조용히 책을 보고 조용히 나가는 공간. 많은 독립서점이 그렇다. 그런데 새 유어마인드는 다르다. 책을 보다가도 자연스럽게 가운데 쪽으로 시선이 간다. 눈이 마주치고, 잠깐 망설이다가도 "이 책은 어떤가요" 같은 말이 훨씬 쉽게 나온다. 딱히 물어볼 일이 없어도,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열린 구조다.

이전 공간이 취향의 밀도로 기억될 가능성이 컸다면, 이번 공간에는 대화의 밀도가 생길 것 같았다. 그 차이는 꽤 크다. 독립서점에서 책방지기는 단순히 책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책을 들여놓을지 고르고, 그 책이 놓일 자리를 정하고, 때로는 추천을 건네는 사람, 말하자면 취향의 안내자에 가깝다. 그런데 그 역할은 의외로 공간 구조에 크게 좌우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존재는 느껴져도 관계는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가운데 자리에 있으면 짧은 한마디가 훨씬 쉽게 오간다. 그 한마디가 서점을 기억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손님들이 아쉬워한 것도 단지 옛 공간이 좋아서만은 아닐 수 있다. 작은 공간에는 작은 공간만의 친밀함이 있다. 그곳에서는 책도, 사람도, 취향도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넓어진 공간을 보며 사람들은 그 친밀함이 희석될까 봐 미리 아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 유어마인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거리를 다시 좁히고 있었다. 공간은 넓어졌지만 중심은 오히려 앞으로 나와 있었다. 전보다 멀어질 수도 있었던 서점이, 구조 덕분에 다시 말을 걸 수 있는 서점이 된 셈이다.

그래서 서점이 이사가는 날은 단순히 책과 선반이 옮겨지는 날이 아니다. 취향의 좌표가 이동하는 날이고, 그 서점이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이 새로 조정되는 날이다. 어떤 서점은 이사를 하며 밀도를 잃고, 어떤 서점은 이사를 하며 새로운 친밀함을 얻는다. 유어마인드의 이번 이사는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예전 공간을 아쉬워하는 마음은 당연히 남겠지만, 몇 달이 지나면 사람들은 또 이 구조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좋아한 것은 특정한 벽이나 특정한 공간이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군가와 취향이 닿는 감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대형서점에만 익숙해 있다. 책과 사람 사이의 거리, 손님과 책방지기 사이의 거리, 말을 걸기 전 망설임과 한마디를 건넨 뒤의 어색하지 않음 같은 것들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니 서점이 이사가는 날 바뀌는 것은 공간보다도 그 거리의 감각이다. 그런데 어떤 서점은, 더 넓어진 뒤에야 오히려 조금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