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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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격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별로 급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로그인 한 번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화면이 나를 멈춰 세웠다.

다음 중 오토바이가 포함된 칸을 모두 고르시오.

나는 잠깐 웃었다. 인간인지 확인하는 방식치고는 꽤 무뚝뚝했다. 이름도, 직업도, 오늘 어떤 기분으로 이 사이트에 들어왔는지도 묻지 않는다. 사랑해본 적 있는지, 누군가를 잃어본 적 있는지, 지하철에서 괜히 한숨이 나온 적 있는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오토바이를 고르라고 한다. 그것도 늘 애매한 사진 속에서. 앞바퀴만 살짝 나온 것도 오토바이인가. 사이드미러만 걸친 건 포함인가. 정답은 언제나 분명한 척하지만, 사진은 늘 흐리고 세상은 대체로 구석에서부터 헷갈린다.

나는 몇 번이고 틀렸다.

신호등도 골라봤고, 횡단보도도 골라봤고, 버스도 골라봤다. 틀릴 때마다 화면은 아무 감정 없이 다시 말했다. 다시 시도하세요. 인간을 증명하는 일에 이렇게 여러 번 실패할 줄은 몰랐다. 어떤 날은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나는 사람인데, 기계는 자꾸 아닌 것처럼 굴고, 나는 그 기계를 설득하기 위해 더 기계처럼 생각해야 한다. 빠르게 판단하고, 칸을 나누고, 기준을 맞추고,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자격을 얻기 위해 잠시 인간다움을 접어야 하는 셈이다.

인간을 가려내는 시험이 왜 이렇게 인간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을까. 사람은 원래 애매한 것을 애매하게 본다. 신호등 기둥이 칸 끝에 걸쳐 있으면 멈칫한다. 저건 포함일까 아닐까. 버스의 모서리가 아주 조금 보이면 고민한다. 세상은 원래 딱 떨어지지 않는데, 정답은 늘 딱 떨어지기를 요구한다. 기계는 그걸 효율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람은 그 앞에서 자꾸 주저한다. 어쩌면 그 망설임이야말로 사람다운 것일 텐데, 인증 시스템은 그 망설임을 오답으로 처리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면서 꽤 많은 장면에서 비슷한 요구를 받는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맞느냐 틀리냐고, 선명하게 대답하라고. 감정도 관계도 의견도 복잡한데, 세상은 자꾸 칸을 나눈다. 여기에 체크하라고 한다. 아니면 저기로 가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대개 횡단보도 한 칸처럼 그렇게 반듯하지 않다. 좋아하면서도 싫을 수 있고,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고, 확신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정확한 클릭을 요구받는다. 마치 인간의 조건이 선명함에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인간 검증 테스트를 받을 때마다 조금 우스운 기분이 든다.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인데, 정작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들, 이를테면 망설임, 문맥, 사소한 오해, 쓸데없는 감상, 괜한 연민 같은 것은 전혀 통과 기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방해물에 가깝다. 화면은 내가 신호등을 알아보는지 궁금할 뿐, 신호등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이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구별하는 능력은 보지만, 밤길에서 배달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 쓸쓸해진 적이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인간을 확인하는 질문인데, 인간의 내용은 빠져 있다.

물론 그 시스템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그건 원래 그걸 위해 만든 장치가 아니니까. 보안을 위해, 자동화를 막기 위해, 누군가의 침입을 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절차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방식에 너무 빨리 익숙해진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이 점점 단순해지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신호만 남고, 나머지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밀려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보기 시작한다. 내가 맞는 사람인지 틀린 사람인지, 통과 가능한 사람인지 아닌지. 삶을 살아낸다는 감각보다 판별된다는 감각이 더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는데, 그 기술이 상대하는 인간은 오히려 점점 납작해진다. 클릭 몇 번으로 증명되는 존재. 사진 몇 장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존재. 기계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만 자신을 보여줘야 하는 존재. 하지만 실제의 인간은 늘 조금 느리고, 조금 모호하고, 자주 헷갈린다. 어떤 사람은 신호등보다 표정을 더 빨리 읽고, 어떤 사람은 횡단보도보다 침묵을 더 오래 본다. 쓸모로 따지면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바로 그런 부분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인증창 앞에서 괜히 고집이 생긴다. 틀리면 어떤가 싶어진다. 오토바이를 제대로 못 골라도, 신호등의 끝부분 앞에서 잠깐 망설여도, 그게 꼭 모자라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세상을 너무 쉽게 자르지 못해서 생기는 일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칸 안에 넣는 데 서툰 사람. 정답을 고르기 전에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온라인에서는 귀찮은 사용자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나쁘지 않은 인간일 가능성이 있다.

다음 중 사람인 것을 모두 고르시오.

그런 문제가 있다면 나는 오히려 더 자신이 없을 것 같다. 사람은 대개 오토바이보다 어렵다. 신호등보다도 훨씬 애매하다. 멀쩡해 보여도 속은 무너져 있을 수 있고, 차가워 보여도 실은 오래 다정한 사람일 수 있다. 늘 틀리면서도 다시 누군가를 믿고, 상처받으면서도 또 관계를 만들고, 분명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니 인간의 자격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정확히 맞히는 능력보다 끝내 헷갈릴 수 있는 능력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