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냄새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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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냄새로 기억된다

서울은 내게 늘 냄새로 먼저 오는 도시였다. 풍경보다 냄새가 빨랐다. 어떤 거리를 떠올릴 때도, 어떤 계절을 기억할 때도, 나는 먼저 그 공기를 생각한다. 서울은 내 안에 길 이름이 아니라 냄새의 층으로 남아 있다.

저녁 여섯 시쯤 홍대입구역에 내리면 늘 비슷한 순간이 온다. 개찰구를 나서는 동안까지는 지하철 안의 공기다. 그런데 몇 걸음만 더 옮기면 금세 달라진다. 튀김 기름 냄새가 밀려오고, 오래 걷고 오래 서 있던 사람들의 땀 냄새가 그 위에 얹힌다. 어디선가 막 피운 담배 냄새도 따라온다. 그때 나는 아, 이제 홍대구나 하고 안다. 간판을 보지 않아도 된다. 서울은 아직 냄새로 자리를 알려주는 도시다.

어릴 때 기억하는 서울의 겨울도 그렇다. 청계천 복개도로 아래를 지나던 어느 저녁, 지하상가 환풍구 근처에서 붕어빵을 굽던 할머니가 있었다. 팥 냄새, 연탄 냄새, 털장갑에 밴 오래된 냄새가 한데 섞여 있었다. 그때 나는 그냥 겨울이라고 느꼈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시절 겨울은 기온보다 냄새로 먼저 왔다는 걸.

지금 그 자리는 달라졌다. 길도 바뀌었고 사람도 떠났다. 연탄 냄새는 오래전에 서울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데도 가끔 비슷한 저녁 공기 속에서 그 시절이 불쑥 살아난다. 정확히 같은 냄새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몸은 안다. 냄새는 사라진 장소를 잠깐 다시 데려온다.

서울은 너무 빨리 바뀌는 도시라 눈으로는 붙잡기 어렵다. 간판은 바뀌고 건물은 새 얼굴을 입는다. 사진만 봐서는 어느 해의 서울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런데 냄새로 기억한 서울은 오래 남는다. 명동 지하상가의 눅눅한 공기, 노량진 수산시장의 비린내, 한강 둔치의 초가을 풀 냄새. 이런 것들은 기록하기 어렵지만 몸 안에는 오래 남는다.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된다. 홍대가 그렇다. 낮에는 원두 냄새와 분식집 국물 냄새가 떠 있고, 밤에는 술과 담배와 향수가 골목을 채운다. 여기에 계절까지 더해지면 같은 동네도 전혀 다른 공기를 갖게 된다. 여름밤의 홍대와 겨울낮의 홍대는 주소만 같지 거의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서울은 자기 냄새를 자꾸 지우려는 도시이기도 하다. 더 깨끗하게, 더 말끔하게, 더 새것처럼 만들려 한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냄새들도 함께 사라진다. 대신 새 아스팔트, 페인트, 실리콘, 소독약 냄새가 남는다. 그것이 지금 서울의 냄새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재개발 현장 앞을 지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 오래 갇혀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오래된 벽지, 눅눅한 계단, 밥 냄새, 세제 냄새, 겨울 보일러 열기 같은 것들. 한 집, 한 건물, 한 동네의 시간이 냄새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잃는지 조금 늦게 알아차린다.

서울이 잃는 것들은 많다. 그런데 냄새는 그 목록에 잘 오르지 않는다. 남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붙잡을 수 없다. 결국 몸이 잠깐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그 몸들이 늙고 사라지면, 무엇이 없어졌는지도 함께 흐려진다.

그래서 나는 서울을 생각하면 자주 냄새를 떠올린다. 이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은 건물과 가게만이 아니다. 계절을 먼저 알려주던 공기, 골목의 성격을 말없이 보여주던 냄새도 함께 지워진다. 누구도 그것을 크게 적어두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안다. 어떤 상실은 냄새로 온다. 서울은 여전히, 내게는 그런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