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남자의 코털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분명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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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남자의 코털

나이를 먹을수록 누가 잔소리하는 게 그렇게 싫다. 백번 옳은 얘기도 일단 반감부터 든다. 그런데 직장상사의 삐져나온 코털을 지적한다고? 그건 불가능하다. 작정하고 직장 생활을 망치는 행위다.

어릴 적에는 엄마의 잔소리 덕분에 그래도 조금은 사람 구실을 한다. 독립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 고약한 습관이나 해선 안 될 행동이 점차 늘어난다. 문제의식도 없다. 왜? 아무도 지적해주지 않으니까. 타인은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범법 행위가 아닌 이상 입을 다문다. 동료나 하급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피하거나, 뒤에서 흉을 보는 게 전부다.

시대가 달라지면 그에 맞는 매너가 요구되고, 그 매너를 지키지 않는다고 소송을 당하는 건 아니다. 단지 시나브로 도태될 뿐이다. 이건 업무 역량과도 별개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도태가 대개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셔츠 깃에 묻은 각질, 누렇게 뜬 손톱, 입을 열 때마다 풍기는 커피와 담배 냄새.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치명적인 것이 있다. 코털이다.

코털은 이상한 존재다. 분명 작은데, 한 번 보이면 얼굴 전체를 장악한다. 상대의 말은 잘 들리지 않고, 시선은 자꾸 그 검은 실오라기 쪽으로 끌려간다. 회의실에서 분기 실적을 설명하든, 소개팅 자리에서 취미를 말하든, 코앞에서 신뢰를 깎아먹는 건 대개 거창한 결함이 아니다. 대단한 무능도 아니고, 결정적인 실수도 아니다. 그냥 정리되지 않은 코털 한 가닥이다.

단정함은 사소함의 총합

남자들은 종종 큰 것에 집착한다. 시계, 구두, 차, 재킷의 핏, 안경의 브랜드. 말하자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단정함이다. 하지만 실제 인상은 그런 데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근거리에서 서로를 판단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페 맞은편에서, 회의실 테이블 너머에서. 그 거리에서는 명품 벨트보다 피부 상태가 먼저 보이고, 고급 향수보다 입가의 건조함이 먼저 보이며, 멋진 헤어스타일보다 코털이 먼저 튀어나온다.

이건 좀 잔인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디테일을 기억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정확히 기억한다. “뭔가 깔끔한 사람”이라는 인상과 “왜 저걸 아무도 말 안 해줬지”라는 인상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만큼의 차이가 호감과 비호감, 신뢰와 거리감, 세련됨과 둔함을 가른다.

코털 관리는 그래서 미용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에 가깝다.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이 괜히 불편해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정리. 나를 설명하는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신호를 관리하는 일. 단정한 사람은 대개 삶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은 요소를 미리 치워두는 사람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시대의 자기 점검

예전에는 무례해도 누군가 한마디쯤 했다. 지금은 다들 선을 지킨다. 정확히는, 괜히 엮이기 싫어한다. 회사에서는 더 그렇다. 선배의 코털을 지적하는 후배는 없고, 상사의 입 냄새를 말해주는 부하는 더 없다. 현대 사회는 점점 친절해지는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점점 덜 솔직해지고 있다. 무례를 참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조용히 멀어질 뿐이다.

그래서 자기 점검이 중요해졌다. 예전보다 더. 이를테면 출근 전 거울을 보는 시간은 단순히 머리를 만지는 시간이 아니다. 오늘 내가 남에게 어떤 인상으로 도착할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넥타이 각도나 재킷 주름만 볼 게 아니라 콧속도 잠깐 봐야 한다. 놀랍게도 많은 남자들이 이 마지막 단계를 생략한다. 바깥으로 삐져나온 코털은, 말하자면 관리의 사각지대다. 정면만 보는 사람에게는 잘 안 보이고, 아래 각도에서 상대를 보는 타인에게는 너무 잘 보인다.

더 곤란한 건 본인은 거의 모른다는 데 있다. 사람은 자기 얼굴을 늘 익숙한 각도로만 본다. 스마트폰 셀카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방심한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개 그렇지 않다.

코털은 인간의 나이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젊을 때는 대충 넘겨지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묘하게 지저분해 보인다. 체력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이런 관리의 감각이다. 나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남들은 작게 실망하고 있다. 나이 든다는 건 늙는 것이기도 하지만, 디테일을 잃지 않는 훈련이 더 필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코털만 문제일까

물론 정말로 코털만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자신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지만 남들은 단번에 알아차리는 것들. 오래된 말버릇, 시대에 뒤처진 농담, 본인만 모르는 권위적인 태도, 설명이 아니라 훈계가 되어버린 말투. 코털은 얼굴 밖으로 삐져나온 습관의 은유다.

그래서 코털 관리는 단정함의 마지막 단계이자, 일종의 상징이다.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을 상상해보는 일. 지금의 매너가 무엇인지, 지금의 불쾌가 무엇인지, 지금의 세련됨이 어떤 결을 갖는지 살피는 일. 이것은 유난이 아니라 훈련이다. 멋을 부리는 일이 아니라 낡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대개 사람을 촌스럽게 만드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 점검이 멈췄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을 단정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취향이 아니라, 사소한 곳까지 감각을 놓치지 않는 태도다. 좋은 재킷보다 정리된 손톱이, 비싼 향수보다 깨끗한 입술이, 화려한 자기소개보다 정돈된 코끝이 먼저 신뢰를 만든다.

그러니 남자들은 가끔 콧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뜻이다. 내게는 사소하지만 남에게는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보고 있는 것들. 사회 생활이란 결국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버티는 일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