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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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의 아침

종로3가역, 아침 8시.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앞으로 쏟아졌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더 눌렀고, 회색 모자를 쓴 노인은 손에 든 교통카드를 잠깐 내려다봤다. 둘 다 서두르고 있었다. 다만 무엇 때문에 서두르는지는 달랐다. 서울 지하철 출퇴근 시간대에 65세 이상 무임 이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3%였고,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9.7%까지 올라갔다. 이 숫자는 지금 논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숫자보다 훨씬 오래된 어떤 질문으로 흘러간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피크 시간대 노인 무료 이용을 한두 시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고 꺼낸 뒤, 이 문제는 순식간에 하나의 정치 이슈가 됐다. 여당은 단계적 제한을 언급했고, 언론은 찬반을 가르는 반응을 쏟아냈다. 지하철은 붐비고, 적자는 쌓이고, 오래된 제도는 손볼 때가 됐다는 말은 분명 그럴듯하게 들린다. 너무 그럴듯해서 사람들은 금방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람들은 빠르게 편을 나눴다. 혼잡하다는 쪽, 적자가 문제라는 쪽, 이동권을 말하는 쪽, 정해진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사정을 떠올리는 쪽. 어느 편도 전혀 이상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 논쟁이 흥미로운 것은, 겉으로는 요금 제도 얘기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질문이 나온다는 점이다. 도시는 어떤 이동을 꼭 필요한 것으로 보고, 어떤 이동을 조금 미뤄도 되는 것으로 볼까.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대개 이해받는다. 병원이나 돌봄이나 작은 일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필요의 모양이 서로 다를 뿐인데, 우리는 익숙한 필요만 빨리 알아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묘한 단순화가 숨어 있다. 시간이 많은 사람, 조금은 비켜설 수 있는 사람, 꼭 지금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하루가 느긋해지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침 시간은 여전히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간일 수 있다. 제도는 평균으로 설계되지만, 사람의 하루는 평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반대로, 이 제도를 그냥 두는 것이 아무 문제도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고령화는 빨라지고, 도시철도의 부담은 커지고, 한 시대에 만든 제도가 다른 시대에도 똑같이 맞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제도는 손볼 수 있다. 다만 '손본다'는 말이 너무 쉽게 누군가의 발걸음을 막는 것으로 번역될 때, 그때부터는 조금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생긴다.

어쩌면 먼저 봐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어떤 혼잡은 구조의 문제로 보고, 어떤 혼잡은 사람의 문제로 볼까. 왜 어떤 이동은 존중받고, 어떤 이동은 조정 가능한 것으로 분류될까. 도시의 효율을 말할 때, 그 효율은 누구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을까.

아침 지하철 안에는 늘 먼저 가야 하는 사람들과 꼭 가야 하는 사람들이 함께 탄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꼭 같지는 않다. 회색 모자를 쓴 노인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아직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