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미국
공화국은 왜 늘 왕의 그림자를 두려워할까. 미국 독립의 역사부터 오늘의 “노 킹스” 시위까지, 한 사람에게 기울어지는 권력에 대한 오래된 불안을 말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지배 아래 놓인다. 부모의 결정, 학교의 규칙, 국가의 법. 인간은 본능적으로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의 꼭대기에 누군가를 올려두려 한다. 왕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단 하나의 나라가 있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왕을 거부하며 세워진 나라. 오늘 그 나라의 거리에서 다시 "노 킹스(No Kings)"라는 구호가 울렸다.
이 문장이 왜 지금 다시 살아났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2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문서의 절반 이상이 자유를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선언서는 사실상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향한 고발장이었다. 왜 우리가 뽑지 않은 사람이 세금을 거두느냐, 왜 멀리 있는 권력이 우리 삶을 제멋대로 결정하느냐. 분노와 논거가 조목조목 나열된 이 문서는, 왕이라는 존재가 왜 위험한지를 설명하는 최초의 현대적 정치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건국자들은 그토록 왕을 두려워했을까?
그들이 경험한 왕정은 단순히 낡은 제도가 아니었다. 왕은 시민을 신하로 만드는 구조 그 자체였다. 그래서 미국 헌법은 처음부터 권력을 쪼개도록 설계됐다. 대통령, 의회, 법원. 셋은 서로를 막고 견제하고 늦추게 돼 있다. 때로는 답답할 만큼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 불편함이 바로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건국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미국 안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타고, 다시 왕 같은 존재가 출현하는 일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미국인들은 왜 트럼프를 비판할 때 독재자도, 권위주의자도 아닌 하필 '킹'이라고 불렀을까?
독재자는 어딘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아시아의 어딘가. 하지만 왕은 다르다. 왕은 미국인들이 직접 싸워서 몰아낸 존재다. 그래서 누군가를 '킹'이라고 부르는 순간, 미국인들은 자동으로 건국의 서사를 떠올린다. 우리 조상이 목숨 걸고 몰아낸 것이 저기 다시 돌아왔다는 감각. 다른 어떤 단어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긴박감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과 비교했을 때 드러난다. 한국에서 왕은 평가의 대상이다. 잘 다스리면 성군, 못 다스리면 폭군.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 관객을 넘긴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왕은 매력적인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왕은 평가 이전의 문제다. 좋은 왕이냐 나쁜 왕이냐를 따지기 전에, 왕이라는 형태 자체가 거부의 대상이다. 그래서 미국 정치에서 '킹'이라는 단어는 멋진 별명이 아니라 거의 최악의 정치적 수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한다. 위기 때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인물. 하지만 동시에 왕은 싫어한다. 강한 대통령은 원하지만 군림하는 대통령은 원하지 않는다. 미국 정치의 긴장은 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생겨났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답답한 절차를 뚫고 나가는 강한 지도자로 보였다. 하지만 그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 눈에는 바로 그 지점이 문제였다. 제도보다 자기 자신이 더 앞에 있는 사람, 충성하는 편과 거슬리는 편으로 시민을 나누는 방식, 법과 의회가 귀찮은 장애물처럼 취급되는 분위기. 이것은 단순히 정책에 대한 반대가 아니었다. 나라 전체가 한 사람의 기분과 충성 구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느낌, 미국인들은 그 감각에 가장 익숙한 역사적 단어를 붙였다.
“왕은 필요없다(No King)”
미국은 여전히 선거를 하고, 의회가 있고, 법원이 있다. 형식만 보면 왕과 사는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형식이 아니라 감각을 말하고 있었다. 모든 뉴스가 한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지지와 반대도 그 사람을 중심으로 갈리고, 제도보다 캐릭터가 더 크게 보이는 상태.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오래된 기억으로 돌아간다.
"노 킹스"는 반트럼프 구호이기 전에, 미국이 자기 자신에게 다시 되뇌이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의 팬클럽이 아니라 시민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 대통령은 강할 수는 있어도 군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공화국은 귀찮고 느리고 답답해도 한 사람의 의지보다 제도가 더 크게 작동해야 버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민주주의란, 왕을 원하는 인간의 본능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저항이 멈추는 순간, 공화국은 다시 왕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