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수의 유권자들은 틀린 선택을 할까
전쟁은 멀리서 보면 국제정치이고, 가까이서 보면 한 사람의 밥값과 기름값이다. 2026년 2월 28일 시작된 이란전쟁이 4주째로 접어들던 무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을 열라는 48시간 시한을 제시하며 전력시설 타격을 거론했다가, 이틀도 지나지 않아 공격을 5일 유예한다고 밝혔다. 국제 유가가 출렁였고 금융시장이 흔들렸다. 한 사람의 말이 세계 경제의 신호가 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았지?
새삼 해묵은 질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린다. 히틀러는 어느 날 독일 위에 떨어진 날벼락이 아니었다. 그는 선거와 정치적 거래, 사회의 불안과 집단적 피로 위에서 독일 권력의 정점에 섰다. 브리태니커는 대공황이 나치 집권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고 쓰고, 미국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은 나치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면서도, 선거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넓혀갔다고 정리한다.
트럼프와 히틀러는 같지 않다. 역사적 맥락도, 폭력의 규모도, 그 결과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 인물을 함께 떠올린다. 둘 다 불안한 사회가 스스로 소환한 '강한 사람의 환상'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틀린 선택은 대개 불안할 때 나온다
사람은 평온할 때보다 흔들릴 때 단순한 말을 더 신뢰한다. 경제가 버겁고, 물가는 오르고, 국경은 불안하고, 기존 정치가 무력해 보이면, 유권자들은 길고 복잡한 설명에 등을 돌린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짧고 강한 문장이다. 내가 끝내겠다, 내가 되돌리겠다, 내가 쓸어버리겠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경제와 이민은 트럼프 지지층을 움직인 핵심 이슈였다. AP는 중산층의 삶을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에 대한 불안이 트럼프 승리의 핵심 배경이었다고 분석했고, 퓨리서치는 등록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본 이슈로 경제를 꼽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경제와 이민은 단순한 관심사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투표 동기였다.
바이마르 독일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주의 자체가 미움받아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자기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무너지고, 정치는 싸움만 반복하고, 사회 전체가 모욕감에 젖어들수록 사람들은 원칙보다 효능을 찾는다. 나치는 바로 그 감정을 파고들었다. 분열된 사회를 '국민공동체'라는 구호로 묶으려 했고, 정치적 반대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면서도 그것을 질서의 회복처럼 포장했다.
위험한 사람이 구원자처럼 보이는 이유
트럼프가 이번 이란전쟁에서 보여준 장면은 이 메커니즘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타격을 위협하고, 유예를 선언하고, 시장이 출렁이는 것을 지켜봤다. 브렌트유 가격은 위협 발언에 급등했다가 유예 소식에 급락했고, 주식시장은 안도 랠리를 연출했다. 외교도, 군사도, 시장도 모두 한 사람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구조였다.
권력은 위기를 만들고, 자본은 그 위기에 가격을 붙인다.
누군가는 폭격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난민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주말 사이 폭락해버린 삼성전자 주가를 걱정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와 LNG 운송의 약 20%가 지나는 길목이다. 이곳이 흔들리면 그 충격은 멀리 있지 않다. 주유소 전광판과 장바구니 물가는 비겁하게도 오름 신호에 빛의 속도로 반응한다.
위험한 지도자가 유능해 보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서가 아니다. 문제를 '내가 장악하고 있다'는 연출을 하기 때문이다. 폭풍 속 배에서 승객들은 차분히 항로를 계산하는 항해사보다 고함치는 선장을 더 믿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방향을 아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공포는 이미 판단을 앞질러 있다. 정치는 자주 그 착각 위에서 굴러간다.
히틀러의 독일, 트럼프의 미국
히틀러를 지도자로 만든 것은 결코 집단이 가진 악의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무능에 대한 환멸, 경제 붕괴, 집단적 상실감, 그리고 누군가를 배제함으로써 공동체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위험한 믿음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나치의 전략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분노로 바꾸는 데 있었다.
"당신이 힘든 이유는 저들 때문이다."
트럼프 정치의 핵심에도 같은 장치가 있다.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이민자의 탓으로, 외교의 복잡성은 힘의 문제로, 민주주의의 절차는 답답한 장애물로 치부한다. 그 단순화가 피곤한 유권자에게 강한 진실처럼 들린다.
퓨리서치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승리의 배경에는 단순한 이념 결집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 변화에 대한 욕구, 이민 문제에 대한 강한 반응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해서 뽑았다기보다, 기존 질서가 자신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한다고 느낀 끝에 그를 선택했다. 여기서 미국인을 비웃는 것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멍청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두려워서 흔들린다. 몸이 아픈 사람은 정밀검사보다 진통제를 먼저 찾는다. 진통제는 병을 고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고통을 줄여준다. 강한 지도자는 종종 그런 진통제처럼 등장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잠시나마 누군가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약점, 다수결이 아닌 다수의 분노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혜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수의 피로, 다수의 분노, 다수의 상처를 어떻게 견디게 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 사람들이 제도를 신뢰할 때 거친 말은 힘을 잃는다. 제도를 못 믿게 되면 거친 말은 솔직한 말처럼 들린다. 원칙이 살아 있으면 선동은 벽에 부딪힌다. 원칙이 형식만 남으면 선동은 결단처럼 보인다.
"왜 다수의 유권자들은 틀린 선택을 할까." 이 질문는 전제 자체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다수는 틀린 선택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고 불확실한 시대에는 틀린 선택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일 뿐이다.
이번 이란전쟁을 보며 사람들은 다시 한번 확인했을 것이다. 위협과 거래의 언어는 늘 빠르고 강해 보인다. 하지만 빠른 언어가 늘 옳은 것은 아니고, 강한 사람이 늘 안전한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 치르는 비용이, 때로는 너무 크다. 2022년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가 그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