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곳 '답십리 고미술상가'
서울은 그 크기 만큼이나 다양한 시대와 표정이 공존하는 도시다. 5호선 답십리역을 나오면 프랜차이즈 간판과 아파트 상가 사이로, 마치 다른 시대에서 잘못 배송된 물건들처럼 석등과 문인석과 낡은 반닫이가 길가에 나와 서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골동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잡동사니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답십리 고미술상가 앞에서는 그런 구분이 금방 무의미해진다. 여기서는 오래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먼저 말을 건다.
답십리라는 이름부터 그렇다. 무학대사가 새 도읍 자리를 살피며 이곳을 밟았다는 이야기, 도성에서 십 리쯤 떨어진 거리라 붙었다는 이야기(실제로 동대문역에서 답십리역 까지 거리는 네이버지도 기준 3.9km다),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곳이 오래전부터 서울의 바깥이면서 동시에 서울의 연장이었다는 점이다. 중심은 아니지만, 늘 사람이 지나가던 자리. 그래서 물건도 모였다. 사연도 모였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그런 동네의 성격을 아주 정확하게 닮았다. 이곳은 인사동처럼 정제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박물관처럼 설명문을 붙여두지도 않는다. 대신 상점 앞에 밀려나온 물건들이 먼저 풍경을 만든다. 석불입상 옆에 돌수조가 있고, 놋대야 옆에 자물통이 있고, 먹줄통과 인두와 홍두깨가 한데 놓여 있다. 한때는 분명 쓰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름부터 더듬어야 하는 물건들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대놓고 쓸모를 잃은 사물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이 거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19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청계천 주변 황학동 시장이 1980년대 중반 답십리 쪽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규모를 갖췄다. 이태원, 아현동 등지에 흩어져 있던 고서화·고가구·도자기 상점들도 차츰 합류했다. 지금은 답십리역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로 나뉘며, 전국 최대 규모의 고미술 판매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단지 “크다”는 데 있지 않다. 값비싼 진품 몇 점보다, 몇천 원짜리 소품 하나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거리라는 데 있다. 인사동이 감정과 권위를 통해 물건의 가치를 설명한다면, 답십리는 조금 더 생활 쪽에 가깝다. 손때 묻은 등잔 받침, 납작하게 닳은 말, 지금은 쓰임을 상상해야 하는 물레와 화로 같은 것들. 이곳의 물건들은 대개 거창한 예술의 언어보다 먼저 “누가 이런 걸 썼을까”라는 질문을 불러낸다. 골동이 권위보다 생활의 결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래서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길거리 박물관 같으면서도 끝내 박물관은 아니다. 박물관이 물건의 원래 자리를 잃은 뒤 그것을 해석하는 공간이라면, 이곳은 아직 거래가 남아 있는 장소다.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고, 어떤 것은 거실 장식이 되고, 어떤 것은 카페의 오브제가 되고, 어떤 것은 정원의 석물이 된다. 보존보다 유통이 앞서고, 설명보다 취향이 먼저 개입한다. 오래된 물건은 여기서 과거의 증거이기보다 현재의 선택지가 된다.
그 선택은 때로 조금 쓸쓸하다. 상가 앞에 놓인 문인석이나 망주석을 보고 있으면 특히 그렇다. 돌은 원래 자기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무덤 곁의 석물은 죽음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고, 절집의 편액은 그 건물의 공기와 함께 읽혀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것들은 가격표가 붙은채 덩그러니 서 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시간을 견뎠는지 다 말해주지 못한 채. 물건은 살아남았지만 맥락은 떨어져 나갔다. 골동품의 아름다움에는 늘 이런 종류의 상실이 섞여 있다.
요즘 답십리 고미술 상가를 둘러보면 또 다른 변화도 보인다. 이곳 상인들의 말처럼 국내산 민속품과 고미술품은 점점 시장에 덜 나오고, 그 빈자리를 중국산 석물이나 공예품이 메우는 장면이다.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모이니 만들어진 자본의 논리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생활의 잔해를 더는 충분히 생산하지도, 유통하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에 가깝다. 오래된 물건이 귀해졌다는 말은, 그것을 낳았던 생활이 더 빨리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의 답십리에는 낡은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읽으려는 시선이 들어오고 있다. 누군가는 골동을 수집품이 아니라 공간의 문장으로 보고, 누군가는 옛 물건을 인테리어와 스타일링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러니까 답십리의 새로움은 새것에서 오지 않는다. 오래된 것을 다시 보는 눈에서 온다. 한 시대의 생활용품이 다음 시대의 취향이 되는 과정. 이 시장은 그 느린 변환을 매일 전시하고 있다.
서울은 늘 앞으로만 가는 도시처럼 보인다. 재개발 구역의 펜스, 더 높아지는 아파트, 더 빨라지는 상권, 더 짧아지는 유행. 그런데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걷다 보면, 도시가 꼭 미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도시는 과거를 밀어내며 커지지만, 어떤 도시는 밀려난 과거를 한구석에 쌓아두고 그 틈으로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답십리는 후자에 가깝다. 서울이 버리지 못한 것들, 혹은 끝내 버리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는 자리.
그래서 이곳을 걷는 일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다. 사라진 생활을 만져보는 일에 가깝다. 손잡이가 닳은 다리미, 묵직한 놋대야, 너무 오래되어 용도를 짐작해야 하는 목물건들 앞에서 사람은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누구의 집에 있었을까. 어느 손이 이것을 들었을까. 저 돌은 원래 어디를 지키고 있었을까. 오래된 물건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이 거리의 가장 정확한 설명인지도 모른다.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가장 큰 매력은 결국 여기에 있다. 낡은 것이 단지 낡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한때 생활이었던 것이 지금은 장식이 되고, 한때 쓸모였던 것이 지금은 취향이 되고, 한때 제자리에 있던 것이 지금은 길가에 나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서울의 많은 거리들이 속도를 판다면, 답십리는 시간을 판다. 그것도 반짝이는 새 시간이 아니라, 손때와 침묵과 약간의 쓸쓸함이 묻은 시간.
그리고 그런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