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굳이 밤을 새워야 할까

장례식장에서 굳이 밤을 새워야 할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밤이 깊어질 무렵, 안내 방송이 흘렀다.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밤 10시 30분 이후에는 빈소 운영을 멈춘다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이 묘하게 생경하면서도 납득이 됐다. 장례식장은 당연히 밤새 불이 켜져 있고, 상주는 잠도 못 자는 곳이라고 너무 오래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그 당연함이 정말 지금도 당연한 건지 이제는 모르겠다.

원래는 이유가 있었다

과거에는 장례식장의 밤샘 문화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부고를 전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옆마을 사람도 해가 진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먼 친척은 밤새 걸어오거나, 꼬박 하루를 써야 빈소에 닿기도 했다. 그러니 빈소는 24시간 열려 있어야 했다.

장례는 죽음을 처리하는 절차이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밤에 오고, 누군가는 새벽에야 도착하니 그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 시절의 밤샘은 관습이라기보다 현실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부고는 문자 한 통이면 전해지고, 전국 어디든 몇 시간이면 닿는다. 장례식장은 냉장시설과 운영 인력, 행정 체계까지 갖춘 공간이 됐다. 예전처럼 누군가를 밤새 기다려야 할 이유는 크게 줄었다.

그런데 형식은 남아 있다. 필요는 줄었는데 관습은 남았다. 그래서 밤샘 장례는 점점 애도의 시간이 아니라 피로의 시간이 되기 쉽다. 특히 상주가 그렇다. 조문객을 맞고, 인사를 하고, 식사를 챙기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몸이 먼저 무너진다. 너무 피곤하면 슬픔조차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애도는 마음이 해야 하는 일인데, 몸이 한계에 이르면 사람은 감정을 느끼기보다 버티는 쪽으로 밀려난다. 고인을 잘 보내기 위해 만든 관습이,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고인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게 밤샘 장례의 가장 큰 모순이다.

밤이 깊을수록 슬픔이 흐려진다

좀 더 솔직해져보자. 장례식장의 밤샘 문화가 늘 엄숙한 것만은 아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술자리가 길어지고, 잡담이 늘어나고, 어떤 곳에서는 고스톱판까지 벌어진다. 애도하러 온 자리인데 어느 순간 장례와 상관없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풍경이 싫다. 너무 싫다.

고인을 보내는 자리라면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고인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밤샘 문화는 종종 그 본질을 흐린다. 남는 것은 깊은 애도가 아니라 상주의 탈진이고, 무거운 추모가 아니라 늘어진 분위기일 때가 많다.

상주는 이미 가장 힘든 사람이다. 슬퍼할 틈도 없이 손님을 맞아야 하고, 앉지도 못한 채 서 있어야 하고, 밤에도 쉬지 못한 채 다음 날 발인까지 버텨야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바닥난 상태에서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온전히 건넬 수 있을까. 상주가 너무 지치면 애도는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흐려진다. 이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장례의 본질과 닿아 있는 문제다.

지켜져야 할 장례의 본질

장례의 핵심은 밤을 끝까지 버티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인을 기억하고, 남은 사람들이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건네며, 무너지지 않은 상태로 그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한번 굳어진 형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장례는 원래 가장 보수적인 의례다. 하지만 필요가 사라졌다면 형식도 바뀔 수 있어야 한다. 밤샘 장례를 줄인다고 해서 고인에 대한 예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피로를 덜어내야, 끝내 남겨야 할 마음이 더 또렷해질 수 있다.

이제는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상주도 쉬어야 한다. 장례도 사람을 덜 지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애도는 오래 버틴다고 깊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깨어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마지막을 마주하느냐다. 무엇보다 장례가 고통을 더하는 절차가 아니라, 슬픔을 감당하게 해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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