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의 밤
금요일 밤이면 원래 사람들은 조금 그럴듯한 일을 한다. 술을 마시거나, 소개팅을 하거나, 적어도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이번 주를 위로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노트북과 충전기를 들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고, 병원 예약을 바꾸고, 밀린 메일에 답장을 보낸다. 이쯤 되면 취미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일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어른의 귀찮은 일들이다.
이 모임의 이름은 더 기막히다. 어드민 나이트. 직역하면 ‘행정의 밤’이다. 사람이 금요일 밤에 누군가를 만나서 하는 일이 행정이라니, 이건 단어만 놓고 봐도 낭만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정확하다. 요즘 사람들 삶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말도 별로 없다.
생각해보면 어른의 삶이란 대단한 결단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인생을 바꾸는 순간보다 비밀번호 찾기, 구독 해지, 반품 신청, 세금 확인, 단체방 답장 같은 일로 더 자주 붙잡힌다. 우리는 스스로를 꽤 근사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본인 인증 문자가 왜 안 오지?” 앞에서 가장 오래 멈춘다. 삶은 거대한 서사처럼 보이지만 실제 운영은 고객센터 FAQ에 가깝다.
어드민 나이트가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사람들은 갑자기 부지런해져서 이런 모임을 만드는 게 아니다. 혼자서는 너무 안 되기 때문에 만든다. 메일 한 통 보내는 데 사흘 걸리고, 예약 변경 한 번 하려다 앱을 세 번 껐다 켜고, 카드값 확인하려다 갑자기 소파에 누워 쇼츠를 보게 되는 그 삶. 다들 비슷하게 망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모여서 같이 해치우자는 쪽으로 간다.
각자 모여 앉아 말은 별로 안 한다. 누군가는 보험 앱을 열고, 누군가는 엑셀 파일을 열고, 누군가는 “나 진짜 오늘은 이것만 하고 간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도 여전히 같은 화면을 보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누가 “나 해지했다”라고 말하면, 그 짧은 문장이 작은 승전보처럼 들린다. 예전에는 사랑 고백이나 합격 소식이 사람을 들뜨게 했다면, 이제는 자동결제 해지 완료가 사람을 기쁘게 한다. 슬픈데 웃기고, 웃긴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어드민 나이트는 사실 요즘식 우정에 더 닿아 있다. 다들 외롭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새벽까지 진지한 얘기를 할 체력은 없다. 누군가를 깊게 만나고 싶지만, 일정 조율부터가 이미 피곤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효율을 핑계 삼아 겨우 만난다. “우리 얼굴 볼까?”보다는 “그럼 그날 만나서 각자 밀린 거 처리할래?”가 훨씬 성사되기 쉽다. 정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 마음은 있는데 에너지가 없다. 그러니 다정함도 새로운 형식을 찾는다.
예전 우정이 함께 취하는 밤이었다면, 지금의 우정은 함께 정리하는 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술잔 대신 멀티탭, 안주 대신 체크리스트, 긴 하소연 대신 “그거 아직도 안 했어?” 한마디. 전보다 덜 뜨거워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꼭 덜 진한 건 아니다. 누군가 내 삶의 가장 하찮고 귀찮은 부분 옆에 잠시 앉아 있어주는 일도, 생각보다 다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즐거우려고 사람을 만나기보다, 귀찮은 일을 끝내려고 사람을 만나게 됐을까. 왜 혼자서는 카드값 정리 하나도 버거운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이건 개인이 유난히 게을러져서라기보다, 각자가 감당해야 할 일상의 운영비가 너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편리한 서비스는 늘었는데, 이상하게 챙겨야 할 것도 같이 늘었다. 세상은 점점 자동화된다는데 정작 사람은 더 자주 관리자가 된다. 자기 삶의 관리자. 그것도 무급.
각자도생의 시대에 사람들은 거창한 공동체 대신 조용한 동석을 만든다. 함께 혁명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인생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옆에 앉아서 메일을 보내고, 예약을 바꾸고, 미뤄둔 것을 하나씩 처리한다. 그런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우리는 대단한 방식으로 서로를 구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구독 해지 화면 앞에서 혼자 두지는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꽤 현대적인 낭만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와인을 나누는 대신 와이파이를 나누고, 인생 얘기 대신 세금 알림을 끄고, 사랑 고백 대신 멀티탭을 건네는 밤. 듣기에는 좀 없어 보이지만, 실은 지금 시대의 체온이 꽤 정확하게 묻어 있는 장면이다. 사람은 여전히 혼자 살기 어렵고, 그래서 끝내 누군가를 찾는다. 다만 그 방식이 예전보다 조금 더 피곤하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조금 더 진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