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주식보다 미움받는 이유
부동산 규제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집값이 앞으로도 계속 올라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집값이 너무 오르면 우리 사회가 버텨내기 어렵다는 것을, 입장이 다른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주식은 다르다. 낙관론자든 비관론자든, 주가가 내려야 건강한 시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식시장이 오르면 대체로 좋은 일로 받아들여진다. 떨어지면 걱정하고, 오르면 안도한다. 이건 너무 당연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똑같이 가격이 오르내리는 자산인데, 왜 한쪽의 상승은 축복처럼 여겨지고 다른 한쪽의 상승은 경계의 대상이 될까. 왜 사람들은 주가 상승에는 다 같이 박수를 치면서도, 집값 상승 앞에서는 표정관리를 하는걸까.
같은 자산인데 다른 반응
주식이 오르면 사람들은 대체로 축하에 가까운 말을 건넨다. 투자 잘했네, 감 좋네, 타이밍 맞췄네. 거기에 약간의 질투가 섞일 수는 있어도, 말의 온도는 대체로 따뜻하다. 그런데 집값이 오르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겉으로는 축하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아직 전세인데, 내년에 계약이 끝나는데, 하는 생각이 올라온다. 같은 상승인데 한쪽은 개인의 판단이 맞아 떨어진 결과처럼 보이고, 다른 한쪽은 운빨 취급한다. 주가 뉴스는 경제면에서 끝날 수 있지만, 집값 뉴스는 어김없이 생활면을 함께 채운다.
이유는 단순하다. 주식은 가진 사람의 수익에서 그치지만, 집값 상승은 곧 다른 사람의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올랐다고 해서 내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마포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억 오르면 그 동네 전셋값도 오르고, 전셋값이 오르면 월세 수요가 밀려나고, 밀려난 수요는 더 먼 동네의 월세를 끌어올린다. 주식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집은 다르다. 부동산은 자산이기 전에 주소이고, 주소는 아이 학교, 출퇴근 시간, 병원까지의 거리를 결정한다.
일각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집도 결국 자산인데 왜 오르면 안 되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30년 전 퇴직금을 털어 마련한 집이 있는 70대에게 집값이 떨어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출을 끼고 산 집이라면 더 그렇다. 다만 여기에는 늘 빠지는 전제가 하나 있다. 내 집값이 오른다는 것은 같은 집을 사려는 다음 사람의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산 가치의 상승과 주거 비용의 상승은 동전의 양면이다. 나는 안도하지만, 그 안도는 누군가의 월급에서 빠져나간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감각
주식도 운으로 수익을 낼 수 있고, 부동산도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사람들의 감정은 꽤 단순하게 움직인다. 주식으로 돈을 벌면 적어도 위험을 감수했겠거니 생각한다. 반토막이 날 수도 있었고, 상장폐지를 맞을 수도 있었으니까. 반면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건 순서다. 2010년에 샀는지 2020년에 샀는지, 강남인지 노원인지, 부모한테 종잣돈을 받았는지 아닌지. 부동산이 반감을 사는 건 돈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타이밍과 출발선의 문제다. 먼저 산 사람은 별다른 노력 없이 이긴 것처럼 보이고, 늦게 도착한 사람은 그 결과를 월세와 대출이자로 매달 납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식은 늦게 들어가면 수익률이 낮아질수도 있고 반대일수도 있다. 집은 늦게 들어가면 매달 지출이 늘어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늦게 산 주식은 그저 수익이 줄어들 뿐이지만, 늦게 구한 집은 더 먼 동네로 밀려나는 것을 뜻한다. 왕복 세 시간짜리 출퇴근, 학군이 다른 학교, LTV 한도까지 꽉 채운 대출, 그리고 그 무게 때문에 미루게 되는 결혼과 출산. 주식의 상승이 기회비용의 문제라면, 집값의 상승은 하루하루 생활의 구조를 바꾼다.
사람들이 집값 상승에 유독 예민한 것은 부동산을 더 나쁜 자산으로 생각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집값 앞에서 노력과 보상의 관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월 200만 원을 저축해서 1년에 2,400만 원을 모아도, 같은 기간 아파트 한 채가 5,000만 원 오르는 장면. 야근을 줄이는 대신 씀씀이를 줄여도, 호가는 그 절약분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장면. 어제까지만 해도 대출을 최대로 끌어쓰면 겨우 닿을 것 같던 동네가 오늘은 아예 계산 밖이 되어버리는 장면.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높은 가격 자체보다, 그런 장면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메시지다.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가 있다는 것. 분노는 거기서 온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공적인 숫자
사람들은 결코 부동산을 숫자로만 보지 않는다. 집값에는 늘 감정이 붙는다. 내가 모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부모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아이를 어느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은지, 대출 한도 계산을 처음 해봤을 때의 그 오후. 주식이 오르면 계좌 잔고가 바뀐다. 집값이 오르면 내가 살 수 있는 곳과 살 수 없는 곳의 경계가 바뀐다. 그래서 집값 뉴스 앞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무심할 수 없다. 세입자는 다음 계약을 걱정하고, 집주인은 공시가격 변동을 계산하고, 무주택자는 멀어지는 숫자를 다시 들여다본다. 이미 모두가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개업소 유리창에는 여전히 네모난 매물표가 붙고, 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빨간 숫자가 뜬다. 둘 다 오를 수 있다. 둘 다 누군가를 웃게 만든다. 그런데 하나는 축하로 끝나고, 다른 하나는 귀갓길을 무겁게 만든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주식 앱을 닫고도 자기 동네 시세는 한 번 더 들여다본다. 한국에서 그보다 더 사적인 일은 드물고, 그보다 더 공적인 일도 드물다.